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과당경쟁에 멍드는 퇴직연금 시장

최근 퇴직연금을 도입한 A사는 국내에선 드물게 근로자가 퇴직연금 운용의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형(DC) 플랜을 택하고 증권, 보험, 은행 등 업권별로 사업자를 선정했다. 사업자로 선정된 한 증권사는 해당 기업이 DC플랜을 도입한 만큼 실적배당형 상품 가입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직원들 대부분이 연 5.2%의 확정 금리를 제공하는 은행권 원리금보장상품을 택한 것이다. 후일 이 증권사는 해당 은행이 직원들에게 1억원 한도로 4.5% 수준의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근 저축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5%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근로자 입장에서는 1억원을 대출 받아 1% 가까운 금리 차익거래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셈이다. 이 증권사의 퇴직연금사업 관계자는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사업장 유치 경쟁이 높은 금리와 부가혜택, 낮은 수수료로 판가름 나는 ‘진흙탕 입찰 경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면서 “각 기업별 특성에 맞는 최적의 퇴직연금 플랜을 제공하고 관리해줄 수 있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퇴직연금 시장은 제도 도입 이후 연 평균 100% 수준의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8년 11월 5조원에 불과했던 적립금은 3월말 현재 31조원까지 불어났고 올해 5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세에도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불공정 경쟁은 여전하다. 고금리 입찰경쟁에 대출금리 인하 등 신종 꺾기까지 횡행하면서 원리금보장상품의 편중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고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과당경쟁에 퇴직연금 시장에 뛰어든 금융회사들의 제살 깎아 먹기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과당경쟁의 최대 피해자가 근로자라는데 있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경우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제 투자수익률은 미미한 실정이다. 결국 퇴직연금 사업자간 진흙탕 경쟁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퇴직연금 사업자 선정의 키를 쥐고 있는 근로자와 기업이다. 근로자와 기업이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마련해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운용 능력과 전문성을 검증한다면 전문성 없이 특별 혜택 제공만으로 사업장 유치에 나선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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