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하냐." "문제를 더 미룬 것에 불과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처럼 큰 불안감을 준 적이 없었다."
17일(현지시간)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 소식이 전해진 후 블룸버그가 전한 월가의 불만 섞인 반응이다. 연준이 글로벌 경기 둔화와 금융시장 혼란 우려에 인상 시기를 연기했지만 불확실성은 오히려 증폭되는 모양새다. 연준의 기준금리 정상화 시기를 놓고 '10월설' '12월설' '내년으로 연기설' 등 여러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또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시장과의 소통에 실패하면서 통화정책의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분석까지 제기하고 있다. 연준의 주요 인사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며 명확한 신호를 주지 못하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에서 금리인상 연기를 압박하고 시장 불안감이 커지자 마지못해 따라갔다는 것이다.
◇비둘기 발언 쏟아낸 옐런=당초 전문가들은 연준이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경우 매파적 발언을 내놓으며 통화정책 정상화가 임박했다는 신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재닛 옐런 의장은 "대다수 위원들이 올해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음달에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반적인 톤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비둘기적이었다. 옐런 의장은 최근 중국발 금융시장 혼란과 글로벌 경기 둔화가 미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옐런 의장은 "유가 하락과 달러 강세 때문에 물가 상승률이 오랫동안 낮은 수준을 지속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준은 이날 미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율 전망치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또 당초 격론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FOMC 위원들은 9대1의 압도적인 차이로 금리를 동결했다. 더구나 위원 한 명은 유럽처럼 인플레이션 상승을 위해 올해와 내년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담은 점도표(dot plot)의 중간값도 올해 말과 내년 말, 2017년 말 각각 0.375%, 1.375%, 2.625%로 지난 6월의 각각 0.625%, 1.625%, 2.875%에 비해 모두 낮아졌다.
이 때문에 미 경제가 점진적인 금리인상마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취약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연준이 물가지표로 삼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올 7월 지난해 동기 대비 1.2% 상승하는 데 그쳤다. 또 8월 산업생산은 0.4% 감소하며 달러화 강세에 따른 수출 둔화의 영향권에 든 모습이 역력하다.
◇기준금리 내년으로 미뤄질 수도=이제 관심사는 연준이 언제 행동을 개시하느냐다. 이날 비둘기적 발언에도 불구하고 옐런 의장이 과거 여러 차례 연내 인상을 공언해온 점을 고려하면 현재로서는 오는 12월이 유력하다. 이번에 연준 위원 17명 중 13명은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6월의 15명에 비해서는 줄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숫자다. 내년과 2017년은 각각 3명, 1명에 그쳤다.
이날 로이터가 옐런 의장의 기자회견 직후 연준과 국채를 직접 거래하는 월가 '프라이머리 딜러' 1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12곳이 12월을 예상했다. 10월은 2곳, 내년은 3곳이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의 브라이언 마틴 이코노미스트는 "12월이 연준이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이르고 현실적인 시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준이 통화정책 결정 때 미 노동시장과 물가, 금융시장, 세계 경기 등을 감안하겠다고 밝힌 만큼 내년으로 미뤄질 수도 있다. 중국발 신흥국 금융불안이 쉽사리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다 유럽·일본 등 선진국 경제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 물가도 연준의 예상처럼 이른 시일 내에 개선될 가능성이 낮다. 실제 이날 연준의 성명서 발표 직후 연방기금(FF) 선물시장은 '올해 안'과 '내년' 금리인상 확률을 각각 절반 정도로 예상하고 거래됐다. 다음달 확률은 25%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