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100만 부 이상 팔린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은 정조가 의혹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마음 한 쪽에 늘 권력을 장악한 노론에 대해 복수심을 가졌던 정조였던 것. 하지만 정조는 집권한 뒤 보복보다 국치에 큰 힘을 쏟았다. 규장각 중심으로 문화 정치를 추진해 조선의 문예부흥을 일으킨 게 첫 번째 업적이다. 붕당정치의 폐단을 바로잡으려는 할아버지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해 정국을 안정시켰고, 소수 시전상인에게 특권을 준 금난전권을 폐지해 상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가슴 속에 상처를 가졌지만 치적(治績)을 남긴 임금이어서인지 자주 소설, 드라마, 영화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이 책은 인간 정조의 삶과 업적을 시대적 배경이 된 사진자료와 함께 극적이면서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국사 교과서의 분위기가 풍기면서도 읽으면 어느덧 소설적 구성을 지닌 묘한 매력을 지녔다. 책은 정조의 화성 행차에서 시작한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는 역사 현장을 전달하는 뉴스 혹은 다큐멘터리 같은 분위기이다. 화성 행차가 끝나면 책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정조의 집권 당시를 비춘다. 정조가 임금이 되면서 전전긍긍하는 노론의 속마음과 정조의 굳은 의지가 묘한 대조를 이루며 흥미진진한 소설로 바뀐다.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현대식으로 바꾼 용어와 문체. 화성 행차 당시 정조는 혜경궁에게 거동하기 불편하지 않냐고 묻는다. 혜경궁의 대답은 "심려치 마시지요"가 아닌 외래어인 요샛말 "노프로블름(No probrom)"이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콘셉트', '브리핑'이라는 외래어를 잔뜩 사용하며 말한다. '남한산성', '논개' 등 다른 역사소설보다 속도감 있게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장감이 떨어지면서 경박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