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얘기를 하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안 내력에 상관없이 남에게 손 안 벌리고 떳떳하게 살고 있습니다."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독립운동가 신규식(1879~1922) 선생의 장손이자 윤보선(1897~1990) 전 대통령의 외손자인 신중수(61)씨는 베를린의 택시기사 생활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71년 파독(派獨) 광부로 독일 땅을 밟은 뒤 중서부 아헨 지역에서 탄광 일을 했고 용역회사 경비일을 거쳐 BMW 공장에 취직했다. 거기서 자동차 운전을 배웠고 80년 '베를린의 택시운전사'가 됐다. 올해 26년째다. 그는 독일에서 운전대를 잡게 된 것에 대해 "당시 한국에 남아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ㆍ25 전후의 좌우익 대결로 부친은 부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그 뒤 무기로 감형됐지만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뒤였다. 집안이 몰락하자 한국 땅을 떠날 수 있다면 광부든 뭐든 상관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마침 사귀던 여인(지금의 부인)이 '파독 간호사로 3년간 떠나게 됐다'고 알려왔고 공항에서 전송하는 순간 나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독일 택시기사는 손님을 찾아다니지 않고 기다리기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있다"며 "언젠가는 경험을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소망을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