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고용노동부가 안보인다

오철수 사회부장(부국장 대우) csoh@sed.co.kr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전국적인 이슈로 부상했던 지난 1월 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의 한 야당의원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당시 금융당국이 정보유출에 따른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카드사 텔레마케터의 신규 영업을 한시적으로 금지한 상태였고 이 때문에 이들의 생계 문제가 논란거리로 부각됐다. 이에 해당 의원실은 고용노동부가 이들의 고용안정과 관련해 금융위원회와 사전이나 사후에 협의를 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하지만 고용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영업금지 건은 금융위가 주도를 했는데 해당 부처에서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뿐이었다. 정보유출 파문으로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성이 흔들리는 상황이었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고용부는 금융위만 쳐다보고 있었던 셈이다. 고용부는 언론 보도 이후 사태의 심각성이 커지자 뒤늦게 부랴부랴 실태조사에 나섰다.

고용부가 고용·노동 현안의 컨트롤타워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있었던 철도파업의 경우를 보자. 철도파업이 보름째 계속되던 지난해 12월23일 국회 환노위에서 "고용부가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냐"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방하남 고용부 장관은 "노사관계 부처 장관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려 했지만 만나서 설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방 장관은 여기서 더 나아가 "불법파업이 되다 보니 우리의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며 "면담을 했어도 (노조 측이) 듣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질타를 받았다. 아무리 불법파업이라 하더라도 노동관계 주무부처의 장으로서 노조와 적극적인 만남을 통해 사태를 해결했어야 했지만 면담을 했어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아예 손을 놔 버린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 등 역할 미미


사정은 올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임금체계 개편과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등 굵직굵직한 노동계 이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가운데 이들 현안을 푸는 데 있어 고용부의 중재 역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통상임금 사태에서도 보듯이 이들 현안을 풀지 않고 놓아둘 경우 개별 사업장의 임단협과 맞물려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모든 기업이 똑같은 이슈를 가지고 한꺼번에 갈등을 겪을 경우 총파업과 같은 전국적인 분규도 배제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고용부는 노정관계를 정상화시킬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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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문제만 하더라도 정부는 경력단절 여성과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 70%를 달성하는 것을 최대 국정목표로 삼고 있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고용부의 역할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현재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이행 점검은 거의 대부분 기획재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고용부는 그 가운데 시간선택제 일자리라고 하는 일부분만 챙길 뿐이다. 일자리 업무만 놓고 보면 고용부가 기재부의 하부 기관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다 보니 고용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모습도 보인다.

물론 국민 입장에서 보면 일자리 문제를 기재부가 챙기든 고용부가 챙기든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고용부의 입지 위축은 그 자체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고용부는 노사관계를 조율해가면서 우리 경제가 순항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 부서다. 최근 들어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 중국의 경기 부진 조짐,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의 공세 등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관계마저 삐걱거린다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무기력증 떨치고 적극 해결나서야

그런데 현재의 노정 관계를 보면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과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등 노사정이 얼굴을 맞대고 풀어야 할 메가톤급 노동 이슈들이 쌓여 있지만 민주노총에 대한 공권력 투입 이후 서로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져 노정 관계는 완전히 단절돼버렸다. 이런 대립적 노사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 해외 악재 속에서 우리 경제가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노사 관계가 안정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부가 지금과 같은 소극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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