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농협이 사업구조 개편을 완료하고 2일 지주회사 체제로 거듭났다. 지난 1961년 옛 농협과 농업은행을 통합한 종합농협이 발족한 지 51년 만이다. 출범은 화려하다. 금융지주는 자산 240조원에 7개의 금융자회사를 거느리는 매머드급이다. 단숨에 5대 금융지주의 자리에 올라섰다. 금융지주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지만 경제지주도 5조9,500억원의 쌈짓돈(자본금)을 토대로 종합유통그룹으로 성장할 채비를 갖췄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주회사 출범은 중앙회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시장이라는 냉혹한 경쟁 시스템에 편입된다는 것을 뜻한다. 협동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업을 영위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새 농협이 떠안게 될 부담은 또 있다. 정부는 농협의 지주 체제 전환을 위해 혈세 5조원을 넣어 줬다. 국민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농협에 투자한 셈이다. 그런 만큼 이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는 달라진 농협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새 출발점 선 지주체제=농협의 지주회사 체제 출범 과정은 그리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당초 농협은 오는 2017년까지 자체 자본금으로 조달해 지주회사를 세우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계획이 틀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 확충에 어려움을 겪은데다 이명박 정부가 재임 기간에 농협 개혁을 마무리하기 위해 지주회사 출범을 골자로 하는 사업구조 개편을 5년 앞당겼기 때문이다.
농협은 우선 출범에 앞서 부족한 자본금은 정부 지원으로 메우기로 했다. 하지만 작업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때로는 갈등도 불거졌다. 충분하지는 않아도 제대로 된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지원금이 조금이라도 더 필요하다는 농협의 입장과 줄이려는 정부 당국 간의 줄다리기가 계속된 것이다. 6조원을 요구한 농협과 2조원을 제시한 정부가 타협을 보지 못하자 청와대가 나서 4조원으로 조정했고 국회 예산안 의결 과정에서 다시 5조원으로 늘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현물출자 1조원을 어떤 방식으로 출자할 것인가를 놓고 또다시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정부는 자본금 지원의 대가로 간섭을 하고자 했다.
그래도 '옥동자'를 낳아야 한다는 양측의 입장은 같고 정부와 농협은 자본금 지원을 대가로 조만간 경영계획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계획이다.
물론 모든 작업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다. 정부와 농협은 현물출자 대상 주식을 계속해서 이야기해나가야 한다. 농협은 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한 산은지주와 기업은행 주식 등 수익성이 높은 주식의 출자를 요구하는 반면 정부는 정책금융 기능 약화를 이유로 이들 주식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출발에 앞서 일시적으로 넘어가는 산통일 뿐"이라며 "농협이 새로운 실체로 태어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2020년 총자산 420조원 목표=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은 농협중앙회라는 협동조합 안에 자체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용사업과 농민에 대한 지원이라는 공익적 성격을 띤 경제사업이 혼재돼 있는 모순을 없앤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중앙회라는 하나의 주체가 목적이 다른 두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다 보니 어느 한쪽도 달성하지 못한 채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지주회사는 이익극대화를 최상의 가치로 하는 비즈니스에 몰두하고 중앙회는 지주회사로부터 받은 배당금과 브랜드 수수료로 농민 지원에 전념하라는 게 사업구조 개편의 근본 목적"이라고 말했다.
농협이 지난해 창립 50주년과 2일 지주회사 출범을 겨냥해 선포한 '비전 2020'에는 이러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전 2020은 '글로벌 협동조합'을 기치로 ▦정도경영 ▦사회공헌 ▦창의혁신 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경영목표로는 금융지주의 총자산을 2010년 말 181조원에서 2020년까지 420조원으로 늘리고 같은 기간 순이익도 7,000억원에서 3조8,000억원으로 증가시키는 것으로 목표로 했다. 경제지주는 농축산물의 산지유통과 도매유통∙소매유통 사업의 점유율을 대폭 높여 대형 할인마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종합유통그룹을 지향한다.
농민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중앙회는 총자본을 현재 14조5,000억원에서 38조원으로 늘리고 조합 지원과 교육 지원 사업 규모도 현행보다 50% 이상 늘리기로 했다.
궁극적인 롤모델은 프랑스 크레디아그리콜(CA)그룹과 같은 글로벌 협동조합으로의 성장이다. 1885년 설립된 상호신용협동조합을 모태로 하는 CA그룹은 1988년 민영화 이후 급성장해 2001년에는 자회사인 크레디아그리콜 중앙은행을 증시에 상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0년 말 기준 총 자산은 은행과 자회사들을 통틀어 1조5,940억유로(약 2,517조7,000억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