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광장의 이완식(44·사시 29회ㆍ사진) 변호사는 국내 도산법 전문가중 1세대로 통한다. 도산법이 국내에서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외환위기 직후부터 법원 파산부에서 기업파산 및 회생 업무를 담당한 경력 때문이다. 1999년 3월, 기업 파산 및 회생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대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전담 파산부를 설치하고, 초대 수석 부장판사에 양승태 현 대법관을 임명했다. 법원은 파산부 판사들이 단순한 재판업무뿐 아니라 기업인들과 파산관재인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 지방법원 단독 판사들 중 능력을 인정받은 유능한 고참급 판사들 위주로 뽑아 배치했다. 이 변호사도 당연히 포함됐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는 동아건설, 대한통운 등 80여개 대기업의 법정관리 절차를 도맡아 진행하면서, 이들 기업의 자산규모가 35조원에 달해 ‘재계순위 4위의 대기업’이라는 수식어가 떠나질 않았다. 당연히 파산부를 총괄하던 양승태 부장판사는 법조계에서 ‘왕 회장’으로 통했다. ◇M&A실무 모아 책 펴내기도= 이 변호사는 99년~2001년까지 수많은 기업들의 법정관리 작업을 도맡아 해 왔다. 이 변호사는 이런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도산법 전문 변호사들이 바이블처럼 여기고 있는 회사정리 실무책자를 발간했다. 밤을 새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 진 이 책자는 2006년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시행 후 법원이 출판한 도산법 실무책자의 기본이 됐을 정도로 실무와 이론이 탄탄하기로 유명하다. 부장판사 2명과 배석판사 4명이 도와줬지만, 수십개의 법정관리 기업들을 관리하면서, 책까지 낸다는 것은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힘든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단 시간내 열정을 너무 쏟았던 탓일까. 이 변호사는 2년여간의 파산부 생활을 접고, 2001년께 돌연 로펌행을 결심하게 된다. 그는 “제조업체나 은행, 증권사, 심지어 건설업체까지 다양한 기업들의 회생 및 파산절차를 진행해보니 ‘로펌에서도 한 사람 몫의 일은 할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내심 법원이라는 틀 안에서만이 아니라, 변호사로서 기업을 회생시키는 ‘명의’ 소리를 듣고 싶었던 욕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건설 회생시킨 ‘명의’로= 이 변호사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가 내려진 동아건설을 회생시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변호사는 법무법인 광장으로 옮겨와, 동아건설의 매각 주간사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대리를 맡아 9년에 걸친 동아건설의 회생 작업 전반에 관여했다. 파산선고까지 받은 동아건설을 회생시키기 위한 법적 이슈는 계속기업가치를 인정할 수 있느냐 여부였다. 회생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청산가치보다 계속기업가치가 크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건설은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청산가치만 인정될 뿐, 계속기업가치를 선정할 수 없었다. 이 변호사를 비롯한 광장의 도산팀은 머리를 맞대고 법리개발에 몰두했다. 난상토론이 이어지다 마침내 동아건설 인수자를 우선 결정한 후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묘수를 고안했다. 이른바 회생 인가 전 M&A라는 새로운 방법론이었다. 기업회생 신청 및 인가 후 M&A를 통한 법정관리 졸업이라는 기존의 절차를 완전히 뒤집은 혁명이었다. 이후 광장 도산팀은 채권단을 끈질기게 설득해 이 같은 방식에 합의하게 됐고, 동아건설 인수자로 프라임그룹을 선정하게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때 프라임 그룹이 제시한 6,000억원이라는 인수금액을 계속기업가치로 간주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고, 마침내 법원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 변호사 등이 발로 뛴 결과, 동아건설은 파산선고를 받고도 기사회생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 이 변호사는 “동아건설은 회사정리신청 개시, 직권파산, 채권단 주도의 M&A, 기업회생신청, 법정관리 종결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기사회생했다. 도산법에 명시된 절차 중 화의를 제외한 모든 과정을 거쳤다”며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동아건설의 회생과정을 압축해 설명했다. ◇ 60세 은퇴가 꿈?= 그가 법복을 벗지 않고 법원에 남아 있었다면, 99년께 파산부를 총괄하던 양승태 부장판사처럼 판사들의 로망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까지는 무난했을 것이라는 평이 법원내에서는 많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직책이나 관직에는 별 관심이 없다”며 손을 내 저었다. 변호사 업무에 그만큼 만족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는 “변호사의 업무는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판사의 업무인) 재판과는 크게 다르다”며 어느덧 변호사 예찬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정적인 재판업무보다는 “일한 만큼 보수가 주어지는” 변호사 업무가 체질적으로 더 맞아 보였다. 이 변호사는 또 변호사만의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줄도 알고 있었다. “사건이 잘 처리됐을 때 고객(의뢰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변호사만의 즐거움”이라며 변호사로서의 행복론도 전파했다. 그는 “죽어가는 기업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민ㆍ형사 사건과는 다른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도 했다. 특히 그는 파산직전의 회사 경영진들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직원들을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일 때는 파산전문 변호사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60세쯤 은퇴할 계획이다. 수년간 한솥밥을 먹다 보니 이제는 가족이 된 동료 변호사들과 가족여행을 가는 게 소박한 꿈이다. 그래서 노년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그는 술·담배를 금하고, 운동으로 몸을 다지고 있다고 살짝 귀띔했다. ◇ ‘납기’준수 강조… “친절이 최고 가치”= 이 변호사의 좌우명은 “‘성실’히 ‘열심’히 산다”이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따라 붙는다. 이 같은 원칙때문일까. 그는 매주 화요일 저녁시간을 쪼개 1시간정도 공부한다. 도산팀 변호사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것이다. 회생사건 실무는 물론, 신탁법 등등. 최신판례를 이해하거나, 새로운 법리개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 변호사는 이 스터디를 절대 사수한다. 이 같은 열의 때문에 법원에서 처음 파산부 일을 맡을 때 이해하기 힘들었던 재무재표는 이제 회계사보다 더 꿰뚫어 보게 됐다. 실제로 회계사가 작성한 조사보고서는 이 변호사를 통해 결함(?)이 발견돼 빨간줄이 그어지기 일쑤다. 그리고 이 변호사는 후배들에게 “납기준수”를 강조한다. 납기준수란 고객에 법률자문 타이밍을 철저하게 지키라는 뜻이다. “고객들은 오늘 당장 의뢰해서 낼 아침까지 답변을 해 달라는 식입니다. 시간이 빠듯하지만, 최대한 이에 맞춰야 도산전문 변호사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게 쌓여 친절한 변호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납기를 제때 못 맞추는 후배들에게는 혼을 내기도 합니다.” 납기준수는 그의 철칙이나 다름없다. 이 변호사가 납기준수를 위해 외부약속도 가급적 잡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객을 위해 사사로이 약속을 잡지 않는 이 변호사. 그는 이미 그 자체로 ‘프로’다. 스타급 19명… 도산 분야 국내 최강 자랑
●광장 도산·신탁팀은 법무법인 광장의 도산·신탁팀은 지난 10여년간 세계물산, 에스케이엠, 인천정유, 해태제과, 한보철강, ㈜진로 등 굵직굵직한 기업회생 사건을 처리해 도산분야에서 국내 최상위급 로펌에 올라 있다. 19명의 전문 변호사로 구성된 광장의 도산·신탁팀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의 전신인 제 50민사부 수석부장판사와 대법관을 역임한 이규홍 대표와 사법연수원장과 동아건설의 파산관재인을 지낸 권광중 고문 등 스타급 변호사가 즐비한 것이 강점이다. 도산·신탁팀 팀장인 이은재 변호사와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출신의 이완식 변호사, 오창석·김선태·김인권 변호사 등도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 받은 도산전문가들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2위 가전제품 유통업체인 '서킷시티'의 파산 관련 정보를 국내 주요 전자업체에 신속히 전달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최근 부동산 경기 악화로 위기에 처한 건설사의 구조조정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도산팀과 신탁팀을 묶어 도산·신탁팀으로 개편했다. 광장 관계자는 "시행사들은 토지와 건물을 신탁한 상태에서 돈을 빌려 시공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건설사들에게 맞춤형 자문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신탁법 전문가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