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총생산(GDP)과 국내총소득(GDI) 등 여러 경제지표는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싸늘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부동산 및 서비스 투자활성화 대책 등 정부 주도의 각종 경기부양책이 우리 경제 전반에 서서히 효과를 내고 있지만 실제 가계 살림살이 개선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창간 53주년을 맞아 서울경제신문이 현대경제연구원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기업지원 중심의 공급 측면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경제부양책이 가계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쪽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질긴 가계부채의 고통…국민 4명 중 1명 가계빚 늘어=한국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의 고통은 여전했다. 설문 결과 올해 들어 가계빚이 '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24.6%로 '줄었다(9.1%)'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변함없다'는 66.3%였다. 우리 국민 4명 가운데 1명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채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빚이 늘어난 이유는 '주택구입 또는 전월세 가격 상승' 등 주거와 관련된 부채 증가가 30.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자녀교육(27.9%)' '사업부진(25.5%)' '의료비 부담 증가(6.1%)' 등의 순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가계빚 증가는 자녀교육과 주택마련 등으로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40대에서 두드러졌다. 가계빚이 늘었다고 응답한 40대는 34.2%로 전체 평균인 24.6%를 크게 웃돌았다. 30대는 '주택구입 또는 전월세 가격 상승'과 관련된 부채 증가가 50.1%로 절반을 넘었다. 40대는 '교육비 부담'이 35.8%로 가장 높았고 50대 이상은 '사업부진(43.1%)'이 가장 많았다. 50대의 경우 '묻지마 창업' 등 자영업자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주거비 걱정하는 중산층…공공요금 인상도 부담=주거비 부담은 월소득 200만~400만원 정도의 중산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우리 경제의 허리역할을 해야 할 중산층이 주거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 주거비 부담이 늘었다'는 답변을 소득 수준별로 살펴보면 ▦100만원 미만 35.7% ▦100만원 이상~200만원 미만 43.9% ▦2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 44.4% ▦300만원 이상~400만원 미만 39.7% ▦400만원 이상~500만원 미만 32.7% ▦500만원 이상이 35.1% 등이었다.
하반기부터 들썩거리고 있는 공공요금은 가뜩이나 주거비 부담에 시달리는 서민가계를 더욱 주름지게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주거비 부담이 '늘었다'는 응답자(39.7%)를 대상으로 증가 이유를 물어본 결과 '수도세∙전기세∙유류비 등 주거 관련 공공요금 인상'을 꼽은 답변이 69.2%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전월세 가격 상승(21.6%)' '주택대출 이자(11.7%)' 등이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의 고연령층에서 '주거 관련 공공요금 인상' 답변이 77.1%를 기록해 평균(62.2%)을 크게 웃돌며 공공요금 인상에 취약했다.
◇하반기 살림살이 더욱 팍팍=정부는 지난달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3%에서 2.7%로 상향 조정했다. 뒤이어 한국은행도 2.6%에서 2.8%로 올렸다. 우리 경제가 하반기 들어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2ㆍ4분기 성장률도 1.1%로 나아졌다.
정부의 이 같은 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랭했다. 올 하반기의 가계 살림살이가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라고 보는 응답자도 많았다. 경제지표와 체감경기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반기 살림살이는 상반기에 비해 어떨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4.2%는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다. '더 나빠질 것(22.9%)'이라는 답변이 '더 좋아질 것(12.8%)'이라는 응답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가계 살림살이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경향은 나이가 많을수록 강했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답변은 50대 이상 고령층에서 33.1%로 가장 높았고 40대 22.2%, 30대 20.2%, 20대 14.0% 등의 순이었다.
직업별로 보면 자영업자가 최근 구조조정과 부진한 경기를 반영해 부정적인 전망이 37.1%로 가장 높았고 '블루칼라' 역시 부진한 제조업 경기 상황을 보여주듯 하반기 가계 살림살이를 부정적(27.8%)으로 예상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들어 각종 경기지표가 호조를 보이는 것과 달리 가계 살림살이는 주거비와 교육비 상승 등으로 가계부채의 덫에 걸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경제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가 지속되면 경제 불안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계부채 경감과 소비진작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