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중국인의 숫자 사랑


한해 1,5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중국 자금성은 800채의 건물과 9,999개의 방을 거느린 세계 최대 궁궐이다. 9,999개의 방은 신의 영역을 의미하는 일만개를 제외하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수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9가 황제의 절대 권력을 상징해왔다. 역대 왕조들은 9가 영원하다는 뜻의 구(久)와 발음이 같다며 영원무궁의 염원을 궁궐 곳곳에 반영해왔다. 명나라 때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천단공원의 계단이 9개이고 자금성 동편에 아홉 마리의 용이 조각된 구룡벽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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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일찍이 은나라 시대의 갑골문자에서 십진법이 발견될 만큼 숫자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건축물이나 조직·도량 등에 만물의 근원이라는 3을 기본으로 삼은 것도 대표적인 예다. 왕권과 나라의 상징인 솥이 다리가 세개라는 점에 착안해 당나라 시절에는 관료제도를 '3성6부'처럼 3의 배수로 사용했다. 숫자는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많이 등장한다. 세계 일류대학 프로젝트인 '985공정'은 1998년 5월4일 베이징대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중국의 현대화를 목표로 대학을 육성해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86년 3월3일에 4명의 원로과학자가 당과 정부에 첨단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863계획'이 만들어지고 21세기를 맞아 100여개의 대학과 학과를 키우겠다며 '211공정'이 명명되는 식이다.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 행사에도 숫자정치가 선보인다. 오성홍기 게양을 맡은 호위부대는 톈안먼 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에서 게양대까지 정확하게 121보를 걷게 된다. 121이라는 숫자는 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부터 올해까지 121년을 의미한다. 발걸음 하나에서도 일본으로부터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되찾아왔다는 사실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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