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화중지병(畵中之餠)

#상황1. 1789년 7월14일 프랑스. 봉건제라는 구체제의 틀 속에 억눌려왔던 민중의 불평과 불만이 터졌다. 전체 땅의 40%를 갖고 있는 2%의 특권층에게 세금을 면제해주겠다는 발표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농민들은 10년 이상 지속된 흉작으로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백성들이 먹을 빵이 없다”는 하녀의 말에 베르사유 궁전에 머물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그럼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황2. 한국소비자금융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연 66%의 고금리로 돈을 빌린 고객이 200만명이다. 한번이라도 대부업체를 이용한 서민은 800만명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대부업체를 찾은 10명 중 7명은 한 푼도 못 빌리고 빈손으로 돌아가고 있다. 수백만명의 서민들은 연 66%의 이자라도 좋다며 손을 내밀지만 돈을 빌려주는 곳이 없다. 대부업체의 연체율은 25%, 대손율은 15% 수준. 100만원을 빌려주면 25만원은 이자를 못 받고 15만원은 떼인다. 그래도 75만원은 급전이 필요한 고객 손에 갔다가 돌려받는 셈이다. #상황3. 법무부와 민주노동당이 외환위기 때 폐지됐던 이자제한법의 재도입을 추진 중이다. 금리상한선을 연 40% 밑으로 낮추자는 것이다. 만약 이자상한선을 낮춰 급전이 필요한 모든 서민이 돈을 빌릴 수 있다면 누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금리상한선을 ‘모든 고객이 돈을 빌릴 수 있는 금리’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금리로 돈을 빌리거나 갚을 수 없다면 대출받을 곳이 없다’는 마지노선의 뜻이 강하다. 상한선을 40%로 낮추면 현재 66%로 대출을 받은 200만명은 더 이상 돈을 빌릴 곳이 없다. 그림 속의 떡으로는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 법정금리를 낮춰 저금리 상품을 많이 만들어놓는 것은 맛있게 생긴 다양한 빵들을 그려놓고 먹으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돈을 빌릴 곳이 없다”는 서민들의 목소리에 대해 “이자를 낮춰 금리가 싼 상품을 많이 만들겠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식의 답을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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