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0월 1일] 미디어렙 정책과 방송공익성

정부가 오는 2009년 12월이라는 시한을 정해놓고 방송광고판매시장의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주장에서 일단 물러선 것처럼 보인다. 일방적 강행 의지를 포기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 당정의 관련 분야 최고 수장들과 종교방송 사장단이 만난 자리에서 밝힌 것이니 혹자는 종교계의 눈치를 본 결정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 논의와 관련해 몇 가지 오해는 풀고 가야 할 것 같다. 우선 경쟁은 효율적이라는 환상이다. 경쟁이 개별적으로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자원의 한계를 지닌 사회 전체로서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 또 미디어렙 경쟁체제 도입을 반대하는 것이 종교방송 등의 재원과 관련된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매체 균형발전과 방송의 공공성 유지라는 미디어 정책의 방향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이다.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몇몇 방송사는 수입이 는다고, 일부 대기업은 좋은 광고시간을 더 확보한다고 좋아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소 광고주와 중소 광고회사에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기회박탈이기도 하다.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이 자유로워야 제품의 질적 경쟁이 촉발되는데 자본에 의한 광고 독과점으로 사회 전체로 볼 때는 오히려 경쟁을 약화시킬 위험도 있다. 더군다나 경쟁체제 도입은 일부 방송사를 제외한 모든 매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종교방송은 물론 지역방송ㆍ신문ㆍ뉴미디어 등 여타 매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쟁체제 도입은 방송광고단가를 급격히 상승시킬 것이다. 프랑스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반면 기업은 방송광고를 위해 제품 가격의 상승을 감수하고서라도 광고비를 증가시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타 매체에 대한 광고비 지출을 줄일 것이다. 그 여파가 일부 매체에는 존립의 문제까지 발생시킬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방송광고판매시장 경쟁체제 도입이 사실상 방송사와 광고주의 직거래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 방송사의 직접 영업시 리베이트, 타 광고주에게 불리한 이면 합의 등 불공정 경쟁은 물론 광고와 기사를 거래하는 행위도 있었다는 비판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방송의 질에도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 유럽 공영방송들에 대한 연구인 맥킨지 보고서는 광고 의존도가 높을수록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진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시청률 경쟁의 결과이다. 한국에서 시청률 경쟁을 완화하는 중요한 장치가 방송광고판매의 공사 대행체제이다. 물론 한국방송광고공사 체제에 대한 불만이 있음을 안다. 프로그램 경쟁력이 수입과 직접 관련이 없어 동기유발이 낮은 문제, 방송광고 판매 효율성에 대한 의문, 프로그램 연계 판매의 부담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미 공사가 매체 담당부서의 경쟁체제, 탄력요금제 도입을 통해 개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이 더 이뤄져야 할 필요도 있다. 또 연계판매는 방송공익성을 위한 조치이지만 그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공사의 노력도 요구된다. 하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일부 방송사와 광고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방송의 공공성과 매체균형발전이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히 경쟁체제를 도입하려면 방송 공익성 보장을 위한 미디어렙의 공적 의무, 방송광고단가의 사회적 조정, 방송사와 광고주의 직거래 효과 방지 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후에 시행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미디어렙의 문제는 경영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의 문제이고 공익성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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