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을 앞두고 정부가 잇달아 선물 보따리를 풀고 있다. 소득인정액 상위 30%를 제외한 중간 소득계층에도 정부에서 책정한 어린이집 보육료ㆍ유치원 학비를, 전문계고 학생 모두에게 입학금ㆍ수업료를 전액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영유아 보육료ㆍ유치원 학비 지원대상은 월 소득인정액(4인가구 기준)이 홑벌이 450만원, 맞벌이 600만원 이하인 가구다. 다문화 가정의 경우에는 소득과 상관없이 보육료를 전액 지원한다.
정부는 이들 3대 서민희망 핵심과제에 올해보다 33% 늘어난 총 3조7,529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원대상을 왜 중하위 70%로 한정시켰는지, 앞으로 지원대상을 더 확대할 계획이 있는지, 왜 모든 전문계고 학생에게 학비(1인당 연평균 120만원)를 전액 지원키로 한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공정 기준ㆍ정책 청사진 제시해야
전문계고 학비 지원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일반적으로 실업계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가정형편이 좀 어렵지 않겠나. 내가 실업계 고교 출신이라 실정을 안다. 그런 아이들이 일자리를 얻어서 남에게 도움 받는 데서 탈출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정부가 좀 폈으면 좋겠다" "균등한 교육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실업계 고교 학생들에게는 전액 정부가 등록금을 부담하는 그런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고 설명한게 거의 전부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이 "지난해 전문계고 학생의 73.5%가 대학에 진학했는데 이들에게까지 학비를 지원해줘야 하는가" "가난한 인문계고 학생은 왜 학비 지원대상에서 뺐나" "정부가 '가난한 학생은 전문계 고교를 다녀라'고 선언한 셈 아니냐"는 비판에 대한 충분한 답을 주진 못한다. 상위 30%를 수혜대상에서 제외한 보육료 지원기준과도 형평에 안맞는 것 같다.
국민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한 전문계고 교사도 "60~70% 학생의 집안 사정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라 했고 전문계고 학생의 34%는 기초수급자ㆍ차상위계층 등의 사유로 이미 학비 지원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청소년 시절 경험이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차라리 "인문계고 선호 현상 때문에 우리나라 제조업의 기술경쟁력이 약화되고, 기술인력난이 심화되고 있어 학비를 지원해서라도 학생을 유치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논리도 함께 폈어야 했다. 그리고 인문계고에 진학한 저소득 가구 자녀에 대한 대책ㆍ청사진도 함께 내놓아야 했다.
어린이집 보육료와 유치원 학비의 경우 기존에 예산 사정 등을 이유로 중간 소득계층에 해당하는 '소득 하위 50% 초과~70% 미만' 계층에 정부가 책정한 보육료 등을 전액 지원하겠다는 것이니 어찌 보면 간단하다. 소득 하위 70%까지 보육료 등을 전액지원하는 시기를 당초 계획(2012년)보다 1년 앞당긴 것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초중고생의 사교육비를 줄여줄 획기적 대책, 저소득 근로자 가구의 노후 최소소득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등의 정책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지는 알 수 없다.
중산층 내편 만들기 논리 앞서
정부 여당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소득 7분위는 가구주의 평균연령이 45세 안팎으로 안정을 바라는 성향이 강하다. 이들 (보수와 진보의) 중간지대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지 않고는 향후 정권 재창출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금을 통해 '상위 20%의 것을 하위 80%에 준다'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 프레임과 6ㆍ2 지방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한 야당의 '(고소득층 자녀에게도) 100% 무상급식' 공약과 같은 보편적 복지정책에 대한 대항마로 '중ㆍ하위 70%를 위한 복지'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도 이같은 복지정책에 대해 "서민뿐 아니라 중산층까지를 혜택에 포함시키고, 아이를 키우는 20~30대 젊은 층까지 우리 쪽으로 끌어오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올 2분기 기준 우리나라 소득 7분위의 평균소득은 가구당 393만원(가구원 3.6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평균 월소득(355만원)보다 10% 많지만 8분위(456만원)보다는 16% 낮다.
서민과 부자를 중ㆍ하위 70%와 상위 30%로 나누는 이명박 정권의 '7대3 친서민 정책'의 약발이 잘 들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