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남북 경협사업의 추진을 위한 재원조달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제시한 해외항만개발펀드 활용, 청와대가 예시한 민간자본 유치사업(BTL) 방안 등에 대해 해당 부처가 ‘불가능하다’고 밝히는 등 처음부터 혼선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퍼주기’ 등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섣부른 재원조달 계획을 내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외항만펀드 대북사업 쓰는 건 무리”=권 부총리가 동해안과 해주항 개발에 관련된 재정 부담 우려에 “우리 항만공사 등이 추진하고 있는 2조원 규모의 해외항만개발펀드로 충분히 추진이 가능하다”고 밝힌 데 대해 이 펀드를 추진하고 있는 해양수산부는 “해외항만개발펀드를 대북경협에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반대입장을 내놓았다. 지난달 경제정책조정회의에 보고됐던 이 펀드는 공공 부문에서 3,000억원 규모를 출자하고 금융기관ㆍ연기금ㆍ손보험사 등 국내 기관투자가가 1조7,000억원을 출자하며 해외 항만이나 물류기지 등에 투자하는 기업이 자금이 모자랄 때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성격. 즉 대북사업과는 무관하다는 게 해양부의 설명이다. 또 이미 베트남 붕타우항, 스리랑카 콜롬보항 개발 등 2개 사업을 추진 중이고 13개 사업에 대해 타당성조사를 실시하고 있어 사실상 투자처가 거의 확정된 상태이다. 박경철 해양부 물류기획팀장은 “해외항만개발펀드는 국가 펀드가 아닌 자산운용사가 운영하는 민간 펀드이기 때문에 수익성이 불투명하고 투자자금 회수에 얼마만큼 걸릴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대북사업에 투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5일 브리핑에서 재원 문제와 관련, “BTL 방식을 적용할 수도 있다”고 밝힌 것 역시 타당성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이다.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BTL 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사업을 주관하는 주무부처가 있어야 하는데 법적으로 주무관청이나 사업을 발주할 관청이 없는 점 등 기술적으로 어렵다”며 “설사 사업이 되더라도 20년에 달하는 장기 약정기간 동안 임대료를 지급할 주체도 우리가 돼야 하는데 이것 역시 보장이 될 수 없는 성질”이라며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경의선 보수, 국제 컨소시엄 가능할까=경의선 개보수 비용 마련을 위한 국제 컨소시엄 구성도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경의선을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시키기 위한 협의가 민간 차원에 머물러 있는데다 개보수에 3조원(30억달러) 규모의 적지않은 재원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경의선 TSR 연결은 한국과 북한ㆍ러시아 등 3개국 철도청이 공동 추진하기로 이미 합의를 마친 상태다. 그러나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의 합의다. 때문에 국제 컨소시엄을 통한 경의선 개보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3차 협의체가 정부 차원으로 격상돼야 하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3개국 합의하에 정부 차원으로 승격돼도 문제는 남는다. 러시아 철도 당국이 추정한 자료에 의하면 경의선 개보수 비용으로 25억달러에서 30억달러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분석에 의하면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돼도 물동량 등을 고려해볼 때 장기간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러시아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컨소시엄에 동참해도 현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참여할 여지가 다분하다. 결국 국제 컨소시엄이 만들어져도 한국이 재원의 상당 부분을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재경부 고위관계자는 “러시아가 우리가 빌려준 경협차관 채권을 북한 내 철도 건설비용으로 상계하는 방안도 예전에 제의했다”며 결국 우리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여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베리아횡단철도와 경의선을 연결시키는 프로젝트에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 다른 국가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국제 컨소시엄 구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문제는 수익성인데 이것이 쉽게 보장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분양 통한 회수 불투명=권 부총리의 “토지공사가 개성에 공단을 조성하는 비용을 지출했지만 분양을 통해 회수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용수와 전력 문제도 토지공사와 한국전력이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투자되고 있다”는 발언 역시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개성공단 1단계의 경우 전체 투자비 2,641억원 가운데 1,500억원 이상을 남북경협기금에서 지원했다. 전체 투자비의 57%를 정부재정에서 뒷받침한 것이다. 1단계보다 규모가 훨씬 큰 개성공단 2ㆍ3단계 추진도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돼 남북경협기금 또는 또 다른 형태의 정부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여기에 대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한 셈이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이번 합의된 경협사업은 과거 쌀이나 비료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사업들로 국제사회에서의 자금조달 등은 상당히 유동적이어서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투자의 효율성을 살릴 수 있는 방안과 더불어 나중에 회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정부가 더욱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