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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데 최근 우연히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를 봤다. 주인공은 대형 로펌에서 가장 잘나가는 변호사로 일제에 징용을 당한 피해자들이나 선박사고로 기름유출 피해를 본 어민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소송에서 대기업을 대리해 승소를 이끌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후 '개과천선'을 해서 피해자들을 돕는다는 줄거리다. 다소 황당한 설정이기는 하지만 법정 또는 로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는데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됐던 많은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어 재미있게 봤다. 특히 주인공이 중소기업들의 소송을 대리하면서 대법관들의 성향을 확인해보다가 '미국에서는 인종이나 여성 등을 배려해 다양하게 대법원을 구성하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나라는 일류대학 졸업해서 사법시험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 튀지 않는 판결을 선고한 비슷비슷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현재 대법원을 구성하고 있는 대법관 중 2명을 제외하면 전부 남성이고 교수와 변호사 경험이 있는 2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법원 판사 출신이다. 게다가 법원의 소위 '로열코스'를 거친 분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분들이 과거 어떤 주목 받을 만한 판결을 선고했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수많은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명확한 법리를 적용해야 하는 대법관의 업무 특성상 업무능력이 뛰어난 판사 출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대법원은 개별사건을 해결하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정의와 가치를 제시하는 역할이 더 중요한 국가기관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법원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인권옹호 기관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법원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로 일정 비율 구성돼야 한다. 지난 2005년 이후 여성이나 진보성향을 가진 인물들로 대법원을 구성했던 시기의 대법원 판결을 분석해보면 다른 시기에 비해 더 많은 전원합의체 판결과 더 많은 소수의견이 나왔다는 연구도 있다. 대법원 구성이 다양한 인사로 이뤄졌을 때 사회 발전과 진보에 관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 다양한 입장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는 뜻이다.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사회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오랜 세월 당연하게 여겨져 온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새롭고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최근 대한변협은 오는 9월 초 임기가 만료되는 대법관의 후임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재야 법조인들로만 후보자들을 추천했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필요성에 대해 그만큼 공감대가 크고 넓다는 뜻이다.
현 정부의 되풀이되는 인사 실책이 '영남 출신, 60~70대, 보수 인사'라는 동일한 집단 속에서 사람을 찾는 '수첩 인사'에서 비롯됐다고 비판을 받고 있듯 다양한 풀에서 유능한 인재를 찾아 등용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정말로 중요하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에게 신뢰 받는 대법원을 만드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일이다. 대법관 임용 때만 되면 으레 나도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필요성'이라는 말이 현실에서 실현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