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하멜표류기와 對中종속

박봉규<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지난 17세기 중반 타이완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다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이 귀국 후 조선의 사정을 처음으로 서양에 알렸다. 그가 남긴 하멜표류기에는 중국 사신이 위세를 부리는 대목이 나온다. 조선을 속국으로 생각하던 중국에서 파견된 사신은 조선의 국왕보다 더 행세를 하면서 국정에 개입한다. 한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여기는 서양인들의 인식에는 하멜표류기가 바닥에 깔려 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못마땅하다. 그러나 사실이다. 중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항쟁한 고구려가 패망하고 통일신라 이후 한반도는 중국의 간섭에 시달려왔다. 묘청과 공민왕ㆍ정도전과 같이 요동정벌이나 자주국가 선포를 주장한 사람도 없지 않았으나 대다수의 지도층은 중국을 천자의 나라로 생각하며 간섭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경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공무역이라는 형태를 통해 인삼과 같은 특산물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선진문물과 고급 소비재를 들여왔다. 종속적 관계와 교역형태가 바뀐 것은 1990년부터 지금까지 겨우 15년 정도다.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 교역면에서는 우리가 주도적 위치에서 공세를 취할 수 있다. 문제는 실로 오랫만에 찾아온 우위가 불행하게도 너무나 쉽게, 짧은 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다. 많은 기업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중국으로 둥지를 옮겼지만 성과는 그리 신통해보이지 않는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곧 중국에 진출한 제조업의 U턴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기술면에서도 중국과의 격차가 2.1년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중국 관료들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 한국기업을 맞이하는 자세도 서서히 바뀌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유일한 대안은 중국경제의 성장이나 기술발전과 일정한 시차를 유지하는 것이다. 중국경제보다 한발 앞선 기술력에 바탕을 둔 원자재ㆍ기계ㆍ부품을 지속적으로 수출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쟁력이 높아진 중국의 완제품만을 수입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하멜표류기가 묘사한 시대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 하겠는가. 시간이 많지 않다. 핵심기술의 개발과 혁신에 총력을 기울여 비극적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한시 바삐 대비하고 준비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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