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그후 10년] ⑤ 태풍권에 든 중소기업 구조조정의 빛과 그림자 구조조정 지연에 체질약화 '벼랑끝'35%가 '기술적 부도상태'…정부 지원으로 연명생산성·수익성 갈수록 낮아지고 투자여력도 줄어정부 경쟁촉진 정책으로 한계기업 퇴출 줄이을듯한미FTA체결땐 양극화 심화…질적 고도화 시급 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 관련기사 '외환위기 그후 10년' 시리즈 전체보기 日 한계기업 생존전략은 위성복 당시 조흥은행장 2006년 11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중소기업인 4,000여명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정부는 각성하라”며 갈라터진 입술로 구호를 외쳐댔다. 이들은 지난 66년 도입돼 40년간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하던 단체수의계약제도(중소기업협동조합이 공공기관에 특정 물품을 독점적으로 납품하는 제도)가 폐지되면 “중소기업은 다 죽는다”며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이 제도는 각종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돼 왔고,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질적 구조조정을 막는다는 비판 아래 결국 지난해말로 폐지됐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제도 폐지로 중소기업간 경쟁 환경이 일대 변화를 겪을 것”이라며 “참여정부 들어 기존의 보호 육성에서 경쟁 촉진으로 바뀌는 등 중소기업 정책의 변화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의 타깃이 과거 대기업에서 이제 중소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더구나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중소기업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영세화가 심화됐고 최근 환율 하락, 금리 상승세 등으로 대외 여건마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는 앞으로 한계기업의 퇴출이 속출할 것임을 예고한다. 특히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구조조정의 태풍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였던 중소기업= “(외환위기 당시) 중소기업은 바람 한 번 불면 날아가는 체질 약한 기업이 많았는데 세계은행ㆍ아시아개발은행 등의 자금으로 연명했다. 현재 중소기업의 약 35%는 기술적으로 부도 상태나 마찬가지다”(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였던 정덕구 열린우리당 의원) “(한국의) 노동시장과 중소기업 부문 등에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지난해 11월8일 미국 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 앤 푸어스(S&P)) 지난 97~98년 외환위기 당시 부도업체는 총 1만8,762개. 이 가운데 대부분은 중소기업이었다. ‘흑자 도산’의 비극도 중기만의 몫이었다. 이처럼 뼈아픈 설움을 겪었는데도 지금 왜 구조조정이 덜 됐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것일까. 대기업은 외환위기 당시 혹독한 구조조정기를 거쳤지만 중기는 업종 내의 경쟁 격화로 자연스레 퇴출된 업체를 제외하면 구조조정이 지연됐다는 게 KDI나 한국은행, 민간연구소 등의 평가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소기업을 구조조정하면 풀뿌리 기업이 무너진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했다”며 “정부도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양적 확대에 치중하다 보니 퇴출 시스템을 만드는데 소홀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정부의 벤처 육성책, 대기업의 분사 및 아웃소싱, 저금리 등으로 중소기업 창업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 97~98년 신설 법인수는 6만144개로 같은 기간 부도난 업체의 3배가 넘었다. 지난 99~2005년 신설법인 업체의 수도 연 평균 5만5,527개로 부도업체 수(연 평균 3,043개)의 18배에 이른다. 중소기업의 역동성을 위해서는 ‘다산다사(多産多死)형’ 산업 구조가 필요하지만 ‘다산소사(多産少死)형’이 정착된 것이다. ◇한계 중소기업 속출할 듯= 좁은 시장을 놓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소기업은 갈수록 어려운 처지로 몰리고 있다. 대기업이 생산성을 100%으로 봤을 때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지난 90년 49.3%에서 2004년 31.3%로 낮아졌다. 또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이 갈수록 낮아지고 저금리 등으로 금융 비용이 줄었는데도 수익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지난 2005년 대기업의 경상이익률이 8.1%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3.6%에 그쳤다. 이와함께 중소기업내에서도 경상이익률 10% 초과 기업과 적자 기업이 동시에 늘어나는 등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의 영세화 현상도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제조업 부문에서 종업원 5~9인 규모의 영세 소기업 수는 지난 90년 2만1,652개사로 총 사업체수의 31.4%였다. 하지만 2004년에는 5만6,976개사로 전체의 절반(50.7%)을 넘어섰다. 영세 소기업이 제조업 종업원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61.7%에서 75.7%로 증가했다. 반면 대기업(300인 이상)의 수는 1,193개사(1.7%)에서 695개사(0.6%)로 대폭 줄었다. 조영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고용 기여도와 수익성이 동시에 늘어나야 하는데 수익성은 떨어지고 고용 기여도만 늘어나는 게 현실”이라며 “그만큼 질이 낮은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수익성 하락으로 투자 여력이 줄면서 성장성도 의문시되고 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국내 83개 업종 3,598개 기업체를 조사한 결과 올해 대선으로 설비투자 증가율이 전반적으로 둔화된 가운데 대기업의 설비투자는 지난해보다 1.7% 줄어든 반면 중소기업은 14.8%나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원석 한국은행 조사총괄팀 차장은 “정부 지원에다 저금리, 환율 상승 등에 힘입어 한계기업도 많이 살아 남았다”며 “대외 경영 여건이 악화되면 타의건, 자의건 구조조정 대상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태풍이 온다= 정부는 지난 2004년 7월7일 ‘중소기업 경쟁력강화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 맞춤형 지원 등 여러 대책이 나왔지만 기본 골자는 경쟁력있는 중소기업을 골라 체질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수석연구원은 “올해는 참여정부의 중소기업 혁신 노력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될만한 기업’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엎고 중소기업이라도 성장세를 구가하겠지만 한계기업은 퇴출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정부 정책 외에도 경기 하강, 환율 하락, 이자 부담 증가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진 중소기업들은 이미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조차 최근 대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금융기관에 대해 “앞으로 경제 여건이 변화할 경우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할 정도다. 한미 FTA는 중소기업간 양극화를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강점이 많은 섬유ㆍ의류ㆍ가죽ㆍ신발 등 한국의 중소기업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하루빨리 중소기업의 질적 고도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서 차장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한계기업을 정리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는 한편 생산성ㆍ수익성 제고를 위해 연구개발투자 확대, 틈새시장 공략 등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이 벼랑 끝으로 몰린 데는 외부 환경 탓도 크다”며 “중소기업의 질적 고도화를 위해 혁신형 중소기업을 많이 키우는 한편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 등을 차단해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장벽을 헐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7/01/29 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