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에 환희불(歡喜佛)이 있는데, 불상은 구슬 장식이 단정하게 갖추어져 있고, 서로 껴안고 있으며 두 뿌리가 한 곳에 모아져 있다. 제왕의 혼례식 때는 반드시 이 불전에 들어가 예배를 마치고 은밀한 곳을 더듬으며 마음속으로 교접의 방법을 깨달아 이불 속에서 행했다.’
명나라 때 학자인 심덕부가 ‘창추헌잉어’라는 책에 기록한 내용인데 환희불은 라마교 사원에 있는 남녀 교합의 불상이다. 라마교는 성애술을 추종하는 종교이므로 불상의 모양이 미루어 짐작될 것이다.
일견 음란하기까지 한 이 불상이 궁정에 모셔진 것은 제왕들의 성교육용 학습자료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왕실 차원에서 성을 연구하고 집대성했음에도 실제 성교육은 미미했다. 책자로는 짐작만 될 뿐 실질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각적인 춘화도도 제작되었는데 춘화도란 세자의 거처인 춘궁(春宮)에서 유래되었다. 혼례 직전 남녀가 교접하는 입체적인 불상의 이모저모를 만져 보는 것이 가장 구체적인 성교육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실제적이었다. 남자들은 사춘기가 지나면 서당에서 ‘보정(補精’이라는 생리철학을 배웠으며, 삼촌 집 사랑들이라는 풍속도 있었다. 조카와 연배가 비슷한 기혼의 삼촌이 혼례를 앞둔 조카에게 구체적이고 실전적인 강의로 운우지정을 전수해 주었던 것이다.
한편 소녀들에게는 화락천사(和樂薦事)라는 풍습을 통해 성교육이 이루어 졌으니 성에 개방적이고 경험이 풍부한 무녀를 수양모로 삼아 남녀상열지사를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교육 내용은 부녀자의 몸가짐과 수태일, 자식 낳는 비방, 남편의 사랑을 받는 법 등 성생활 전반에 걸친 것이었다.
하지만 슬기로웠던 우리의 전통적인 성교육이 계승되지 못해 안타깝다. 물론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고 있지만 형식적이고, 물밀듯이 성이 개방되는 시대 상황을 따라 가기에는 역부족이다.
피임이나 임신과 같은 생리적 내용보다 원조교제나 몰카, 포르노에 노출된 현실을 바르게 대처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성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혼모가 급증하고 혼전 낙태는 위험수위에 와있다. 실효성 있는 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