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직장 다니랴 애 키우랴 힘든데 …" 딸 결혼 말리는 엄마들

■ 설 앞둔 또 다른 풍속도

며느리 삶·직장내 차별 마음 고생 많이한 엄마

"시집가라 떼밀기 싫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꿈 마음껏 펼치기를"

직장 일과 육아에 명절 음식 준비 등으로 맞벌이 여성들의 부담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요즘 들어 딸의 결혼을 말리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SBS TV 월화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의 한 장면으로 드라마의 내용은 기사와는 무관하다.
/사진제공=SBS

최모(55)씨는 얼마 전 딸(29)과 결혼 문제를 놓고 가벼운 말다툼을 벌였다. 결혼 적령기인 딸과 결혼 때문에 다퉜다면 엄마는 결혼을 재촉하고 딸은 그만 좀 하라고 반발하는 그림을 그리기 쉽다. 하지만 최씨의 경우는 반대였다. 딸은 결혼을 서두르려 하는데 엄마가 "뭐 하러 굳이 결혼하려고 하느냐"며 말린 것이다.

최씨가 딸의 결혼을 말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 많이 바뀌었다지만 결혼은 여전히 여자에게 굴레라는 것이다.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최씨는 이를 실감한다. 최씨는 맏며느리다. 올해도 설 전날에 아침 일찍 시골에 내려가 장 보고 전 부치고 만두 빚고 제사상 차리고 설거지하는 일을 도맡아야 한다. 그뿐인가. 20명 가까운 일가친척의 잔 수발도 그의 몫이다. 예전에는 동네 지인들 30~40명까지 모셨던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상황이 나아진 것이다. 동서 한 명과 시어머니가 손을 거들기는 하나 명절 준비의 총 책임자는 맏며느리이기 때문에 그들과는 의무감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행사를 설, 추석, 시아버지·증조할아버지·할머니·고조할아버지·할머니 제사, 시제까지 1년에만 8번 치러야 한다.


최씨는 "맏며느리로서 명절을 잘 치러야 한다는 압박감은 직장에서 중요한 임무가 떨어졌을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며 "딸도 결혼하면 나 같은 고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어떻게 결혼하라고 떠밀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제사는 힘들지만 하루 이틀만 바짝 고생하면 된다. 하지만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다. 야근과 퇴근 후 회식 문화가 여전한 풍토에서 가사·육아를 이와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 감사실·총무실 등에서 일해온 최씨는 "딸이 초등학교 때 한창 바빠서 매일 오전1~2시에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쉴 새 없이 일하는 와중에 아이들 챙기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그때 돌을 막 지난 둘째 아이를 돌볼 방법이 없어 큰 아이인 딸이 동생을 밥도 먹이고 챙겨줬다. 지금도 딸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 마음이 짠하다"고 고백했다.


국회에서 일하는 조선옥 보좌관도 딸에게 "네가 꼭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굳이 결혼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편이다. 조 보좌관은 "국회에서 국정감사라도 열리면 밤늦게까지 상시 대기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아이들과 집안일까지 챙기는 것은 대부분 여자인 내 몫"이라고 전했다. 그는 "남편이 가사를 도와주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세세한 것은 엄마가 다 챙길 수밖에 없다"며 "엄마와 아빠의 마음은 천성적으로 다른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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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차별도 여전하다. 같은 조사에서 여성관리자들은 승진 승급(29.5%), 근무성적 평가(23.6%), 부서 업무 배치(18.9%), 취업(18.5%) 등 대부분 영역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대기업에서 부장을 맡고 있는 정모(51)씨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남성 위주 조직문화가 만연한데 여기에 못 따라오는 워킹맘은 애사심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나도 딸에게 일로 정말 성공하고 싶으면 결혼을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결혼을 안 하면 나중에 힘들지 않을까. 정씨는 "남자라면 몰라도 여자는 생활력이 강해서 혼자서도 잘 산다"며 "요즘은 결혼 안 하고도 사회에서 인정받고 인생 즐기면서 멋지게 사는 여성들이 많지 않느냐"며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딸 결혼을 말리는 엄마'인 박모(52)씨는 결혼을 하면서 이루고 싶었던 꿈을 접었던 경우다. 그는 교육자의 길을 가고 싶어 대학원까지 합격했으나 결혼하면서 꿈을 포기했다. 다행히 딸은 대학원을 다니며 당신이 못 이룬 길을 밟아나가는 중이다. 박씨도 자녀가 다 커서 큰 걱정이 없어진 올해 들어서야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박씨는 "나는 이미 늦었지만 딸은 끝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나갔으면 한다"며 "결혼이 굴레가 되지 않는 사회가 와서 여자들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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