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7월 8일] 티셔츠 입는 은행원
윤용로 기업은행장
일본인들의 조어(造語) 능력은 참으로 뛰어나다. '가라오케' '다마고치 게임' '핸디캠' '메가뱅크' 등 일일이 예를 들기도 벅차다.
여름철에 들을 수 있는 대표적 일본식 조어라면 바로 '쿨비즈(Cool Biz)'가 아닐까. 넥타이를 매지 않고 시원하게 일하도록 만들어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를 실천하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지난 2004년부터 일본 환경부를 중심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다.
쿨비즈는 이제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고, 특히 보수적이라는 은행 창구에서도 티셔츠만 입고 일하는 모습이 일반화됐다. 은행은 어떻게 쿨비즈와 인연을 맺게 됐을까.
은행은 전통적으로 돈을 관리하는, 그래서 정직과 근면ㆍ절제의 상징이었다. 은행 점포에 가면 아무리 더워도 시원하고 말끔하게 차려 입은 직원들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3차 오일쇼크라고도 불리는 최근의 경제상황은 이런 전통을 뒤흔들었다. 이제는 은행원들이 넥타이를 풀어버렸다. 나아가 와이셔츠 대신 반팔 티셔츠를 입는 은행도 생겨나게 됐다. 노타이만으로도 냉방온도를 2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반팔 티셔츠를 입으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1만여명의 종업원과 570여개 점포를 보유하고 IBK기업은행의 경우 냉방온도를 1도 높이면 에너지 비용이 연간 2억원 절감된다. 그러니 티셔츠를 입어 냉방온도를 3도쯤 높이면 연간 6억원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물론 와이셔츠 세탁과 다림질에 들어가는 세제와 전기료, 주부들의 가사노동까지 감안하면 더 많은 부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돼 있다. 이제 미국의 직장인 중 넥타이 차림으로 일하는 비율은 6%에 불과하다. 미국 내 넥타이 판매량은 1995년 13억달러에서 2007년 6억7,700만달러로 반토막났다. 이에 따라 넥타이 산업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2008년의 원유가 폭등은 전통적인 은행원의 모습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런 변화가 사회·문화적으로는 어떻게 진행될지 두고 볼 일이다. 어렸을 적 더운 여름날 어머니 손잡고 따라갔던 은행 점포의 시원한 추억도 이제는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