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윤종룡 삼성전자사장(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전문경영인)

◎“…직접 걸레질을” 현장경영 신봉/철저한 업무스타일 정평… “메모박사” 별칭/“미래사업 과감투자·한계사업 정리” 선 뚜렷/「삼성전자=반도체」 탈피 정보통신등 21세기형 주력품목 육성 박차삼성그룹 비서실은 이건희 회장이 부회장 시절인 지난 70∼80년대 발언기록을 복원하는 데 있어 80%이상을 윤종룡 전자소그룹장 겸 전자사장의 색바랜 노트를 활용했다. 이회장은 비서실에 『당시 지시한 내용이 여지껏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그때 발언내용을 찾아 지금 강조하는 것과 차이점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비서실은 당시 임원들을 대상으로 기록유무를 확인했으나 대부분 기억을 못하거나 메모를 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오직 윤사장만은 당시 지시내용을 깨알같이 메모해 보관하고 있었던 것. 중학교 때 부터 일기를 써온 메모가 체질화되고 기록를 중시하는 윤사장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이런 습관은 일본본사 사장시절 일본경제신문에 소개돼 화제를 모았을 정도. 이회장이 「그룹기관차」인 삼성전자 사령탑에 그를 중용한 것도 메모습관에서 보듯 꼼꼼하고, 철저한 업무스타일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사장은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취임과 함께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직과 경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며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변화하지 않은 임원은 중용하지 않겠다.』 그의 개혁드라이브에서 사업구조 재편은 특별히 눈길을 끈다. 그 핵심은「선택과 집중」. 그는 묘목 및 씨앗사업(미래주력 및 기초사업)에 공격드라이브를 걸 것임을 천명했다. 반면 현재의 주력사업내지 성숙사업인 과수사업은 철저한 권한이양을 하고, 고목사업(한계사업)과 「주춧돌사업」중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에서는 과감히 철수하겠다는 것. 이는 『최고경영자는 앞으로 3∼4년안에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 묘목사업과 5∼10년후 주력사업이 될 씨앗품목들을 찾아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론에서 비롯되고 있다. 최고경영자는 전략을 수립하고, 전쟁과 전술은 임원과 고참간부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삼성은 윤사장의 비젼에 따라 반도체(특히 비메모리반도체)와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등 정보가전, 멀티미디어, 무선통신등 정보통신을 집중육성, 21세기를 맞을 방침이다. 반면 사무용 기기(OA), 소형TV, 오디오, 소형가전 등은 중소기업에 이양하거나 해외이전을 강력히 추진할 계획이다. 작은 본사와 현장경영을 위해 본사의 업무와 권한을 각 사업본부 및 사업부에 대폭 이양하고, 임원들을 해외본사에 전진배치하는 등 조직수술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개혁의 핵심 포인트. 윤사장은 철저한 현장경영주의자다.『경영자는 1년의 반은 시장을 파악하고, 나머지 반은 미래를 통찰하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백마디의 말이나 번지르한 브리핑보다 직접 걸레질하는 실천이 소중하다』는 것은 이런 지론의 실천항목. 그가 전자의 가전부문대표를 거쳐 전기·전관사장으로 일하는 동안 생산현장에서는「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말이 유행했다. 품질혁신운동(TPM), 공정혁신등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생산라인을 돌아볼 때마다 기계밑바닥이나 기계뒷부분을 직접 만져보고 먼지를 체크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구호다. 윤사장이 내건 변화의 3대 캐치프레이즈는 ▲스피드경영 ▲심플경영 ▲자율경영이다. 이런 목표는 『가능한 작은 본사 작은 본부를 지향하면서 권한을 이양, 자율경영이 되도록 하겠다』는 윤사장의 경영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타성과 고정관념, 형식주의, 이기주의, 권위주의를 없애고, 유연한 사고로 재무장해야 한다. 창의와 효율을 저해하는 모든 제도와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는 이들 3대 경영철학의 요체를 잘 설명해준다. 윤사장은 특히 「시장선점 일등주의」를 강조한다.「2등은 영원한 꼴찌」라는 것. 이를위해 새로운 기업문화 창조는 윤사장이 특별히 관심을 쓰는 분야다. ▲따라가는 문화보다 앞서가는 문화를 창조하자 ▲내부지향의 문화를 타파하고 고객지향의 문화를 정립하자 ▲「파이」를 나누는 문화에서 파이를 키우는 문화로 바꾸자는 것이다. 매출 21조원을 바라보는 국내 최대제조업체인 삼성전자는 새선장을 맞아 21세기를 향한 항로를 상당히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전임 김광호 미주본사회장 시절「삼성전자=반도체」였으나 윤사장 체제에서는 반도체 외에 ▲정보가전등 멀티미디어 ▲정보통신 ▲컴퓨터 ▲백색가전 등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캐시카우(Cash Cow·수입원) 역할을 해온 메모리반도체 경기의 불황에 대응, 비메모리등 「묘목」의 경쟁력제고도 삼성의 변화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윤사장은 70∼80년대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가전을 두 기둥으로 삼고 있을때 강진구회장을 정점으로「좌 김광호(반도체) 우 윤종룡(가전)」체제의 한 축을 형성했다. 특히 80년대 비디오사업부장 시절 세계 4번째로 VCR을 독자개발, 국내기술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린 것, 지난 89년 전자부문 부사장때 가전내수시장에서 정상에 오른 일, 전관사장으로 있을 때 품질혁신과 설비증설, 해외투자를 통해 오늘날 세계1위의 브라운관 업체로 도약시킨 것은 그의 경영능력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소주집 즐겨 찾는 소탈한 성품 털털한 경상도 사투리에 소탈한 웃음이 친근감을 주며, 임원들과 식사에서는 소주집을 즐겨 찾는다. 서울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 답지 않게 감성이 풍부한 경영자란게 주위의 평이다. 고호의 그림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의 조예를 갖고 있으며, 중국의 사서삼경 등 고전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걸어다니는 사전」이라는 별명은 이런 데서 나왔다. 다양한 분야에 전문가적 식견을 갖고있는 이건희 회장과 토론을 벌일 수 있는 그룹내 몇 안되는 최고경영자라고. 특히 그는 지난 93년 일본소설가 구리 료헤이가 쓴 「메밀국수 한그릇」(어머니와 아들 3명이 식당에서 메밀국수 한그릇으로 저녁을 때우는 이야기로 검소함이 주제)이란 소설을 읽고 서울경제신문에 독후감을 기고하고, 전사원이 볼 수 있도록 사보에 게재하기도 했다. 품질·디자인 등 소프트경쟁력 강화에 승부를 걸고있는 삼성전자호의 선장으로 적임자란 평가를 잘 뒷받침하는 사례다.<이의춘> □프로필 ▲1944년 경북 영천생 ▲경북대 사대부고 ▲서울대 전자공학과졸 ▲66년 삼성그룹 입사 ▲80년 전자 비디오사업부장 ▲88년 가전부문 부사장 ▲90년 가전부문 대표 ▲92년 삼성전기 사장 ▲93년 삼성전관 사장 ▲95년 일본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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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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