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질병을 앓아도 돈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요. 특히 행려 환자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난 9월29일부터 10월5일까지 7일간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함께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작품전시회를 열고 있는 서양화가 김미옥(48)씨는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각박할수록 소외 이웃에 대한 관심만큼은 식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전시기간 중 작품판매 수익금 100%를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보호시설에 기부, 행려환자 재활치료비로 지원할 계획이다. 김씨는 “지난6월 그곳에서 미사를 본 후 행려 환자들의 딱한 사정을 조금이라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면서 “스스로 성찰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김씨의 이번 작품전이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그가 단지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한 작품전시회를 였었다는 사실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김씨 자신도 평범한 한 시민이자 주부이기에 ‘무소속’으로 남모르게 실천한 이웃사랑 10여년의 세월이 큰 가치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요즘보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던 10여년 전에는 집안일을 하다 남는 시간에 계란을 팔아 수익금 전액을 행려 환자들의 재활치료비로 보탰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좋은 일 한다면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일부는 “집안살림이나 제대로 하지 봉사활동은 무슨 봉사 활동이냐”는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집안일이나 제대로 하라는 것이었지요.”
그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마음의 상처가 컸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 그런 생각도 충분히 가질 수 있겠다고 이해하면서부터는 속상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행려 환자들을 보호하는 시설에서 병실청소를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마저 편안해집니다. 남들에게 무엇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지난해 5월부터는 짬짬이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임종을 앞둔 말기 암 환자들을 보면 지나친 욕심은 부질없이 느껴진다”면서 “남을 해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음이야말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김씨 작품에는 들꽃과 풀ㆍ나무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캔버스 속의 장르가 이렇게 ‘고착화’ 된 것은 그의 인생철학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꽃과 나무ㆍ자연이야말로 언제나 변치 않는 희망을 준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작품전의 타이틀을 ‘함께 가는 길’이라고 정한 것도 ‘소외이웃 사랑’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 텅 빈 들녘과 앙상한 가지를 볼 때마다 한여름 뙤약볕을 견디며 힘들여 가꾼 과실을 아낌없이 나눠줬다는 자연의 넉넉함을 느낍니다. 자연은 하나를 더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아요.”
김씨는 “사람들 중에는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독에 탐욕의 물을 쏟아 붓고, 남의 것을 가로채 쓸어 담기도 한다”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눔의 기쁨을 공유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을은 또 다른 희망의 계절입니다. 수확을 앞둔 들녘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살아 있는 꿈과 희망의 품종을 챙겼으면 합니다. 누군가에게 손 내밀어 마음 속의 풍경을 나누고 사랑도 나누는 쉼표 있는 삶, 그게 바로 건강한 인생이자 삶이 아닐까요. 조금 쉬어가는 것이, 그래서 조금 늦어진다고 모두를 잃는 것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