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의 수출중단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곡물파동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지구촌 수억명을 심각한 기아상태로 몰아넣었고 아이티ㆍ필리핀ㆍ이집트 등 세계 곳곳에서 폭동이 발생한 지난 2008년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가격폭등의 주인공이 핵심 식량인 밀이라는 점이다. 밀 가격 상승은 콩 등 다른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일반물가가 오르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4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12월 인도분 밀 가격은 6.7% 상승해 부셸(약 27.2㎏)당 7.615달러로 2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밀 가격 상승으로 콩ㆍ쌀 등 다른 곡물의 가격도 올랐다. 밀 대체식량인 쌀은 이날 100파운드당 11.25달러에 거래돼 6월보다 16%나 인상됐다.
밀 가격 급등은 올해 밀 생산량이 2,500만톤 줄어들 것이라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전망에 러시아의 수출중단 가능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지난주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으로 수출하기로 한 7만톤의 밀 선적이 늦춰지고 있고 소브이콘리서치센터가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수출이 잠정 중단될 수 있다"고 전망하는 등 러시아의 수출중단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상승속도가 2년 전 식량위기 당시를 넘어선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밀 가격은 지난 6월9일 저점 이후 현재까지 78% 상승했다. 이는 2008년 1~2월 상승률(41%)을 크게 앞서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밀 가격이 2008년 식량위기 때(부셸당 13.49달러)보다 낮지만 이 또한 안심할 수 없다. 밀밭을 황폐화한 고온을 동반한 가뭄이 이달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9월부터 시작되는 겨울밀 파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겨울밀은 러시아 전체 밀 생산량의 65%를 차지해 겨울밀 파종이 지연될 경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호주 NSB은행의 마이클 피트는 "시장 분위기가 점차 패닉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승이 이어지더라도 상승폭이 둔화돼 곡물파동 재연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조성배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단기급등에 따른 차익물량이 나올 수 있고 현재 소맥과 옥수수는 재고물량이 있는 편이어서 추가 상승에 제약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