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부담으로 기존부실 정리 - - 사전관리 강화 신규발생 막아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출범후 금융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은행들은 「부실」이라는 단어에 극도로 민감해졌다. 은행 이름 하나만 믿고 수십년씩 거래를 하던 고객들도 「부실은행」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미련없이 돌아서기 때문이다.
한 번 찍힌 「부실」 낙인은 두고두고 은행들의 발목을 잡는다. 과거 덩치를 키우면서 내준 몇 건의 기업대출이 부실화됨에 따라 지난 6월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은 7개 은행들은 하반기 내내 고객들의 질책을 받으면서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느라 진땀을 흘렸다.
합병을 앞둔 상업-한일(한빛)은행이나 조흥-강원은행이 새로운 은행 이름을 찾아 나서는 것도 「조건부 승인」이라는 낙인을 씻고 새출발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구조조정을 거친 은행들이 저마다 내세우는 목표는 부실이 없는 「클린뱅크」다.
현실적으로 은행들이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유일한 방법이다. 지난 9월 성업공사에 2조8,000억원에 육박하는 부실채권을 넘긴 조흥은행의 리스크관리 담당자는 『성업공사에 매각하지 않고는 은행들이 안고 있는 대규모 부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제일, 서울, 광주, 전북은행을 제외한 18개 은행들이 지난 9월 성업공사에 일괄매각한 부실채권은 총 13조2,793억원. 덕분에 지난 6월 말 29조원을 웃돌던 은행권의 무수익여신은 9월말 현재 6조원 이상 줄어든 22조원대로 축소됐다.
각 은행은 부실채권 매각으로 줄어든 자산분을 정부 출자나 유상증자를 통해 메운다. 나쁜 피를 빼내고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피를 수혈하는 셈이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중에도 성업공사를 통해 은행 부실채권을 2차 매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 성업공사가 매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실채권 규모는 12조~17조원. 두차례의 대규모 정화(淨化)를 거치면 기존에 쌓인 부실분이 대부분 제거될 것이라는게 금융계의 관측이다.
부실을 털기 위한 은행의 자체 노력도 훨씬 강화됐다. 개인 파산이 급증하면서 개인대출의 부실화 정도가 심해지자 은행들은 저마다 연체금 회수를 위해 사후관리반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은행대출을 갚는게 늦은 채무자에게는 사후관리반에서 돈 갚으라는 독촉전화가 빚발친다.
일부 은행은 민간 신용정보회사에 악성 채권추심을 의뢰하기도 한다. 서울, 고려, 국민 등 대규모 신용정보회사는 IMF이후 은행과 2, 3금융권 등 전 금융기관의 채권추심 의뢰가 늘어나면서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 상업은행의 경우 아예 자회사인 상은신용관리를 두고 BC카드의 악성채권 회수를 의뢰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만으로 은행들이 부실 없는 「클린뱅크」로 거듭날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연구원의 고성수(高晟洙)박사는 최근 배드뱅크 설립에 관한 공청회에서 『내년에 신규 발생할 부실을 감안하면 성업공사가 십여조원의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것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국민, 주택, 신한, 한미, 하나은행 등의 우량은행이 인수한 5개 퇴출은행 자산의 부실화로 내년 부실채권 매입 규모는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은행권의 무수익여신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4조4,000억원 이상의 부실이 신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각 은행들이 「클린뱅크」를 선언하고 나선 순간에도 대출은 꾸준히 부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은행 부실을 막기 위해선 부실채권 매각이나 연체 관리라는 사후 대책보다 사전 방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여신관행이라는 소프트웨어 개혁에 은행권 초미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신경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