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6월 17일] 글로벌 위기 이후 신 통상 정책

권구찬(뉴욕특파원)

지금부터 6년 전인 지난 2003년 6월 미국의 상무부는 한국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가 불공정 무역행위라며 하이닉스반도체에 44.71%에 이르는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상무부는 하이닉스가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통해 산업은행으로부터 받은 기업금융을 세계무역기구(WTO)가 규정한 ‘금지보조금’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 산업은행이 2001년 한시적으로 시행한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현대사태로 마비 상태에 빠져 있던 회사채 시장을 살리기 위한 금융시장 안정조치로 하이닉스뿐 아니라 현대상선 등 다른 회사에도 비차별적으로 적용됐다는 점에서 WTO가 규정하는 ‘금지보조금’이 아니라는 한국의 해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이닉스는 그로부터 5년 후 지난해 10월에서야 상계 관계 부과시한이 종료되면서 보복 관세의 공포에서 해방됐다. WTO가 규정하는 금지보조금은 ‘특정 기업의 수혜성과 이에 따른 산업 피해’가 입증돼야 하는데 대체로 기술개발 명목의 지원금이 아니면 걸면 걸린다. 이 조항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으며 이런 해석상의 갑론을박을 차치해도 이 조항이 만들어진 뿌리에는 선진국의 개도국 제조업 견제 논리가 깊숙이 깔려있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이닉스가 5년 동안 보복관세에 시달리도록 한 문제의 금지보조금 조항을 미국에 적용해 보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융위기로 기업의 자금 조달길이 막히자 기업어음(CP)을 사줬고 예금보험공사(FDIC)는 회사채를 발행할 때 지급보증을 서주고 있다. 산업은행이나 FRB의 개입은 별반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600여개 은행에 자본을 대줬으며 제너럴모터스(GM)과 크라이슬러의 1대와 2대 주주이기도 하다. ‘포괄적 금지보조금’으로 확대 해석하면 두 회사의 채권단이 보유한 채권의 출자전환 역시 불공정 무역행위로 문제 삼을 수 있다.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보호무역의 기치가 되살아나고 있으나 세계 각국은 위기공조가 우선이라며 일단 날 세우기를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가 끝나고 경쟁의 시절로 되돌아가면 누가 불공정한 게임을 벌였는지 시시비비를 가릴 공산이 크다. 위기의 승자와 패자가 갈리면 잠복했던 무역 분쟁이 고개를 들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세계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출구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현 시점이야말로 우리 통상당국은 위기 이후 신통상 질서에 대비해야 할 때다. 외환위기 이후 비싼 수업료를 내고 이식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이를 가르친 선진국에 같은 잣대로 재단해 따질 것은 따져야 마땅하다. 주요20개국(G20)에 오른 한국으로서는 차제에 독소조항으로 불리는 WTO 금지보조금 조항을 논란의 여지없이 보다 구체화하도록 국제 사회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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