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멕시코:1(경제를 살리자)

◎“먼저 정치안정” 국민합의로 위기극복/「페소화폭락」 딛고 인플레진정·5%성장 개가지난 10일은 1919년 멕시코혁명의 민중지도자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죽은 날이다. 이날 멕시코시티 중심가 「개혁의 거리」에서는 수만명의 농민들이 보슬비에 옷깃을 적시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70년간 정권을 장악한 제도혁명당(PRI)이 초기의 혁명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하오 46세의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은 사파타의 고향 푸에블라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 『집권당은 멕시코 혁명의 이념을 존중하고 있으며 더이상 대지주의 횡포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멕시코는 요즘 개혁과 화합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 지난 94년말 농민반란, 대통령후보 암살 등 극심한 정치혼란 속에서 엄습한 페소화 폭락의 여진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멕시코 지도자들은 정치민주화와 경제개혁을 두 축으로 해 대타협을 이뤄내고 있다. 정치불안에서 파생한 경제위기였기에 정치안정만이 경제회복의 전제조건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확고해진 것이다. 멕시코 경제는 이같은 정치·사회적 안정에 힘입어 페소화 위기의 후유증을 딛고 최근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95년 마이너스6.9%를 기록한 성장률은 96년 5.0%로 페소위기가 발생한 94년의 3.5%를 웃돌았다. 올해는 4.5%의 안정적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95년 50%나 폭등한 물가는 지난해 27.7%로 둔화됐고 올해는 연간억제선을 15%대로 낮춰잡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들의 투자심리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멕시코에 유입된 외국인투자규모는 모두 64억달러로 93·94년 수준엔 미치지 못했지만 위기상태였던 95년보다는 두배나 늘어났다. 집권 직후 페소위기를 맞은 세디요대통령이 경제난 극복을 위해 취한 첫 조치는 국민화합이었다. 95년 1월 정부, 기업, 노조, 농민 대표들은 「긴급사태 극복을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경제성장을 위한 연대협약」을 타결, 실질성장률 4.0%, 인플레이션율 15%를 달성하기 위해 97년도 임금·물가·통화량 등의 경제운영 목표를 조절하기로 합의했다. 한마디로 사회 각 계층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기에 앞서 국가적 목표 아래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한번 뛰어보자는 국민적 선언을 한 것에 다름아니다. 세디요대통령은 정치적 측면에서도 과감한 조치를 단행했다. 집권초 야당인 국민행동당(PAN) 출신의 페르난도 안토니오를 검찰총장에 임명, 야당을 포용했으며 부정부패와 정치테러의 의혹이 있는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대통령의 친형 라울 살리나스를 전격 체포했다. 남부 치아파스 지역의 농민게릴라들과 협상, 제도권 내로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한편 멕시코시티 시장 선출방식을 임명제에서 선거제로 바꿨다. 부패와 파벌싸움으로 얼룩진 제도혁명당에도 대대적인 수술을 벌였다. 여론조사는 오는 7월 실시되는 첫 멕시코시티 시장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멕시코 산업은행(NAFIN)의 로날도 푸셀 해외투자국장은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해도 경제혼란은 없다』며 『민주화가 정치와 경제의 안정을 동시에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예일대 출신의 젊은 대통령이 펼치는 강력한 지도력과 이에 호응하는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돼 암울했던 멕시코는 이제 희망찬 내일을 향해 내닫고 있다.<멕시코시티=김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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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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