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 김동호박사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의 레이저 분광학 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레이저 분광학은 수십조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자연계의 초고속 현상을 규명하기 위한 학문이자 기술이다. 대표적인 게 분자의 운동이다. 또 광전자 소자 등 첨단 부품들도 연구 대상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에 관한 한 80년대까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金박사는 지난 8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들어간 뒤 10여년만에 이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었다. 특히 97년에는 「풀러렌」의 독특한 성질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개가를 올렸다. 레이저의 문외한이었던 우리나라가 세계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金박사는 이 분자가 레이저를 흡수할 경우 10억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시간에 에너지(빛)를 방출하고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자 세계 과학자들은 이 실험 결과를 100여편의 논문에 인용했다. 풀러렌이 발하는 빛의 존재가 우주 탄생과 생명체 형성의 비밀을 풀어줄 단서가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풀러렌은 빛을 내지않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金박사의 업적은 무엇보다 한국표준과학원 레이저 분광학 연구실 자체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데 있다. 이 분야 권위자로 노벨화학상을 받기도 했던 대만의 와이 티 리(Y.T. LEE) 박사가 최근 방한, 연구실을 둘러보고 『세계 최고 수준과 비교해도 흠잡을 데가 없다』고 극찬을 했을 정도다.
金박사의 연구개발 업적은 특히 풀러렌 연구결과를 비롯해 지금까지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된 총 150여편의 논문을 통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기술을 바탕으로 독자 개발한 분광 분석기, 색 측정기, 단색화 장치, 초고속 카메라 측정장치 등도 그의 업적들이다.
그러나 金박사는 『이 모든 결과를 종합해 정말로 남기고 싶은 게 있다』고 강조한다. 분자의 특이 성질을 밝혀내고 이를 근거로 분자들을 유용하게 결합해 현재의 반도체 소자를 대신할 「분자 전자 소자」를 만드는 것이다.
金박사는 『「분자 전자 소자」는 PC·휴대폰 등 각종 전자·통신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대체하는 인위적인 분자의 덩어리』라며 『멀지 않아 상용화 수준의 분자 전자 소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균성 기자 GS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