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영국 한인공동체(한민족경제권이 떠오른다)

◎“한국타운 발아기” 한-영 교역량 비해 입지 빈약/교포 4,000여명뿐… 대부분 슈퍼·식당 운영 생활기반/최근엔 무역·섬유·건설업 진출 “경영성공” 주목도지난 7월 12일 영국 킹스턴 근교 페어필드 파크(Fairfield Park). 「한·영접촉 2백주년 기념 축제」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가운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교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파란 잔디로 둘러싸인 공원은 어느덧 한복의 물결로 넘쳤고 국악과 민속공연이 이어지면서 축제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다. 2백년전인 1797년 영국인 선원이 부산항에 첫 입항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치러진 이날 행사에는 5백여명의 교민뿐만 아니라 킹스턴시장과 기업인등 현지인들도 다수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행사를 주관한 재영한인회 관계자는 『영국내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민들이 실로 오랫만에 한자리에 모였다』며 『현지 정치인이나 기업인들도 대거 참석, 교민들의 활동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교포들의 모임이라는 차원을 넘어 현지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국가홍보의 기회로도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95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대영국투자는 2억5천만달러 규모. 전체 해외투자금액의 2.5%, EU지역 투자분의 21.1%를 차지하고 있다. 투자기업만 1백20개사를 넘어서며 특히 LG전자와 현대전자는 최근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지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단지를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해 현지 언론과 경제계로부터 우호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또 금융의 중심지답게 영국의 수도 런던에는 은행 보험 증권등 무려 50여개의 국내 금융기관들이 진출해 있다. ○EU 총투자액의 21% 이같은 외형적 수치만 놓고 본다면 영국은 우리나라의 주요한 투자대상국이자 교역국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외형과는 달리 실제 영국내에서 우리 교민들이 차지하고 있는 입지는 그리 대단치 못하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국가적 이미지가 취약한 데다 현지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사회공헌도 역시 미미한 실정이다. 실제로 영국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한인 교포수가 적은 나라로 꼽힌다. 정확한 통계는 파악되지 않지만 대략 3천∼4천명 수준에 불과하다는게 현지 교민들의 어림 짐작이다. 일개 대도시지역에만 수만명이상씩 교포들이 거주하는 다른 나라와는 아예 비교가 되질 않는다. 우리 교포의 영국 이민사는 지난 7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년대에도 독일등 인접국에서 이주해온 교민들이 일부 있긴 했으나 극소수에 불과했고,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된 것은 70년대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박정희대 통령의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국내기업들의 영국시장 진출이 잇따랐고, 이때 주재원으로 파견된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현지에 눌러 앉으면서 교민 1세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4년이상 국내에 거주하며 세금을 납부한 사람에 한해 거류증(Resident Visa) 신청자격을 부여하고 있는데 70년대 입국한 한국주재원들중 상당수가 이같은 방법을 통해 현지교민으로 정착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영국에 거주중인 교민들에 대한 통계는 아직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교민들이 각자 자신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거류증을 발급받기 때문에 이를 전체적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한인회 관계자는 『국내기업체 현지 주재원과 유학생등을 합쳐 재영 한인수는 모두 1만8천명 정도로 추산된다』며 『이중 실제 현지에 정착한 교민수는 3천∼4천명선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재원정착 점점 늘어 이 관계자는 또 『영국의 경우 투자이민보다는 주재원으로 들어왔다가 정착한 케이스가 더 많다』며 『3∼4년 정도 체류한 후 그런대로 살 만 하다는 판단 아래 정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민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입국했다가 살아가면서 정착하기로 마음을 바꾼 케이스가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한국인의 영국진출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이처럼 저조했던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60∼70년대 한국 내부의 분위기가 미국 일변도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민이나 유학을 떠날라 치면 무조건 미국행을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어쩌다 유럽행을 계획한다 하더라도 대부분 독일이나 프랑스를 선호했고 영국은 주요 대상국에 포함되지 못했었다. 또 「영국은 해가 지는 나라」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영국행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이렇다 보니 영국은 「한때 영화를 누리던 나라」정도로만 인식됐을 뿐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한국 이민객들의 관심을 끌어모으지 못했던 것이다. 열악한 여건속에서 영국에 정착한 초기 교민들은 대부분 서비스업종에 종사했다. 국내기업 주재원들을 상대로 식당이나 부동산 임대, 슈퍼마켓등을 운영하는 것이 주류였다. 넉넉치 않은 자본과 가족단위의 인적 구성등을 감안할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이같은 추세는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런던 근교 뉴몰든(New Molden)과 킹스턴(Kingston)지역은 이렇게 하나둘씩 모여든 교민상가들로 인해 어느새 조그마한 한인타운으로 변모했다. 뉴몰든 하이스트릿은 상가와 주거 복합지역으로, 또 킹스턴은 주거전문지역으로 한인교민들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킹스턴에 주거지 형성 박근화 삼성화재런던지소장은 『90년대 초반부터 교민들이 킹스턴과 뉴몰든지역에 모여들기 시작해 한인타운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며 『주재원들중 상당수가 한국상가가 많은 이들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비스업을 생활기반으로 삼고 있는 대다수 교민들과는 달리 직접 제조업이나 무역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에버렉스무역의 김정웅사장(56)은 그 대표적인 케이스. 김사장은 지난 72년 대구지역 중소섬유업체 주재원으로 런던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3년여 동안 현지 영업에 나선 김사장은 75년 1만파운드의 자본을 들여 직물원단 수입업체인 에버렉스사를 설립,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다. 「열번 찍어 안넘어 가는 나무없다」는 소신아래 회사이름도 「영원하다」는 「Ever」와 「도끼」라는 의미의 「Ax」를 합성해 에버렉스로 정했다. 김사장은 주재원시절 인연을 맺은 현지 섬유공장과 국내 직물공급업자들 사이를 오가며 조금씩 영업범위를 넓혀갔고, 어느덧 영국 섬유시장내 메이저 직물공급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됐다. 직물수입으로 자리를 잡은 에버렉스사는 설립 22년만인 지난해 매출액 4천만파운드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고, 최근들어서는 직물가공수출분야로 까지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김사장은 또 한국인 최초의 「롤스로이스 구매자」로도 유명하다. 지난 8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부와 출세의 상징이라는 롤스로이스를 구입한 데 따른 유명세다. ○중견기업으로 자리 이밖에 건설자재회사인 퍼모스트코포레이션의 장민웅사장도 성공한 경영인으로 꼽힌다. 장사장 역시 국내 건설회사의 런던지사장으로 부임했다가 현지에 눌러앉은 케이스로 건설자재 판매업에 손을 댔다가 때마침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수주한 동아건설의 자재납품권을 따내면서 큰 돈을 벌었다. 또 가구무역업으로 성공을 거둔 드레이크마리타임의 안해학사장과 포크 나이프등 주방기기를 생산하는 (주)초근의 조성영사장등도 제조업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현지 기업인들이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 미국이나 동남아지역과 같이 초대형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교민이 거의 없는 데다 전문적인 중소기업 경영인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는 게 교민사회의 자체 평가다. 차성욱 재영한인회사무국장은 『기본적으로 영국에 정착한 사람이 적다보니 경제 문화 언론등 각 분야에서 성가를 올리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그리 많지않은 편』이라며 『몇명 안되는 교민들끼리라도 자주 모여 한인의 입지를 스스로 강화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내 이민희망자들에게 영국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줌으로써 장기적으로 교민수를 늘려가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런던=이종석 기자> ◎인터뷰/차성욱 재영한인회 사무국장/“떼돈 욕심만 없다면 현지생활 편안·안정 교민들 모이는 기회 자주없어 큰 아쉬움” 『지난 87년 처음 유학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영국에 대해서는 변변한 자료조차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애초부터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영국을 선택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던 시절이지요』 차성욱 재영한인회사무국장(40)은 우리나라가 영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말로 화두를 열었다. 한때 유럽의 맹주로까지 군림했던 영국을 의외로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에서 국제화란 대부분 미국행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유학이나 이민을 떠날라치면 으레 미국을 떠올리는게 관행이지요. 이런 여건속에서 유럽이나 영국행을 선택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차국장은 이같은 인지도 부족으로 인해 영국 교민수가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적은 4천명선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투자이민보다는 국내기업 주재원으로 입국했다가 눌러앉은 사람들이 교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게 그의 설명. 『해외에 진출한 교민들을 하나로 묶는 한민족공동체의 개념이 부각되고 있지만 영국은 아직 이같은 개념을 적용하기에 시기상조인 감이 없지 않다』고 밝힌 그는 『LA처럼 한 도시에만 수만명의 교민이 거주하는 나라도 있고 영국처럼 전체 교민이 수천명선에 불과한 나라도 있는 만큼 일괄적인 잣대로 각국의 한인사회를 비교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아울러 영국내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교민들이 서로 자주 모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한인 스스로 입지를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떼부자될 생각만 없다면 그냥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곳입니다. 기왕에 이민을 떠날 요량이라면 영국으로 오는 것도 괜챦은 대안이 될 겁니다』 그는 어느새 영국애찬론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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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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