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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업들이 경기둔화에 맞서 인수합병(M&A)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 중이지만 '반독점 규제'의 암초에 걸려 잇달아 좌초하고 있다.
영국 최대 이동통신 업체인 보다폰의 그리스 자회사와 현지 3위 통신사 윈드헬라스의 합병계획 역시 반독점규제의 덫에 걸려 철회될 가능성이 높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리스 2위 업체인 보다폰이 윈드헬라스와 통합하면 가입자 수가 400만명에 달하고 시장점유율은 50%에 육박하게 된다.
이 경우 약 50%의 점유율로 현재 1위인 국영통신사 코스모테와 복점(duopoly)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FT는 보다폰이 윈드헬라스와의 합병 대신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것이 유럽연합(EU) 규제당국의 허가를 받기 쉽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면서 이 같은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합병 초읽기에 들어갔던 세계 최대 원자재 중개업체 글렌코어와 스위스 광산업체 엑스트라타 역시 EU 집행위원회의 반독점 조사라는 복병을 만났다. 5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호아킨 알무니아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이 양사의 합병건을 조사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글렌코어와 엑스트라타가 합병할 경우 자산규모 880억달러로 전세계 화력발전용 석탄시장의 3분의1을 장악, 1위 기업으로 부상하게 된다. EU 집행위는 양사 합병이 역내 석탄시장 경쟁체제를 저해하는 요소가 되는지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이미 EU 집행위는 반독점 규제를 무기로 관심을 끌었던 초대형 M&A를 여러 차례 무산시킨 바 있다. 최근 세계 최대 현물 및 선물거래시장의 탄생을 예고했던 독일증권거래소와 뉴욕증권거래소(NYSE) 간 합병이 대표적이다.
지난 1일 EU 집행위는 독일증권거래소를 운영하는 도이체뵈르제와 NYSE를 운영하는 NYSE유로넥스트의 합병이 독점 문제로 이어져 효율적인 시장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라 이를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양사의 합병은 2008년에 이어 또다시 물 건너가게 됐다. 집행위는 양사 통합거래소가 유럽 파생상품시장의 90%를 지배할 것으로 추산했다.
유럽의 반독점 규제당국은 해외 기업들이 유럽 업체를 인수하는 건에 대해서도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미국의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J&J)이 스위스 의료기기 업체 신테스를 213억달러에 인수하는 건과 관련, 조사 2단계(PHASE II review)에 착수하고 최종 판결도 당초 예정된 날짜에서 10일 미룬 오는 4월2일로 연기했다.
이처럼 반독점 규제당국이 잇달아 기업들의 M&A에 어깃장을 놓자 경기둔화로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EU 집행위의 도이체뵈르제와 NYSE 간 합병불허는 반독점 규제당국이 향후 기업 M&A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EU 집행위가 반독점 조사를 질질 끌면서 합병을 계획했던 기업들이 가격협상을 되풀이하고 더 많은 법률자문 수수료를 부담하게 하면서 거래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 측은 "모든 합병건은 사안별로 다르며 사실에 입각해 결정하고 있다"면서 "지난 22년간 검토한 5,000건의 반독점 조사 중 21건만 금지했으며 이는 0.4%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