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지난 2001년 국민· 주택 합병은행 초대 행장에 오른 후 '세계 50위 은행 진입'으로 목표로 내걸었다. 당시 합병 국민은행의 세계 순위는 60위권 후반. 그때만 해도 국민은행은 명실상부한 '리딩뱅크'였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속도로 볼 때 50위는 금세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어떨까. 국제 금융전문지 '더뱅커'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KB금융그룹의 세계 순위는 68위로 변화가 없다.
글로벌 금융사와 일본 은행들은 물론 중국·동남아 은행들까지 규모를 키우며 세계로 나가고 있는데 우리 금융회사들은 역주행을 한 셈이다.
'잃어버린 13년'. KB의 퇴행적 행보는 우리 금융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규모 세계 15위에 50위는 물론 60위에 드는 금융회사 하나 갖지 못한 것이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금융관료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금융인이나 정책을 만드는 당국자들이나 '후진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4대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한국 금융사의 가장 큰 문제는 경쟁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삼성 등 제조업체들은 글로벌 업체들과 매일매일 사투를 벌이는데 우리 금융사들은 편안하게 이자 따먹기를 하고 있으니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평했다.
지난 22일 우여곡절 끝에 KB금융그룹의 새 수장이 된 윤종규 회장 내정자의 부담이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KB금융뿐 아니라 한국 금융산업이 새로 태어날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도 우리 금융산업 전반에 대해 원점에서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금융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는 "4대 금융지주는 2금융권을 포함한 추가 인수합병(M&A)을 적극 시도하고 우리금융 매각작업도 메가뱅크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금융당국과 금융인들이 중지를 모아 세계 50위 금융사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