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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처럼 어두운 땅 속에서 지름 70㎝의 길쭉한 캡슐의 머리가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광부 플로렌시오 아발로스의 7살배기 아들은 그 동안 꾹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에 운집한 수천 명의 인파로부터 쏟아지는 탄성과 우뢰와 같은 박수 속에 캡슐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이윽고 온 세계가 숨 죽이며 기다리던 그 사람, 아발로스가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13일 오전 0시11분(현지시간). 지난 8월5일 칠레 코피아포 인근의 산호세 광산의 붕괴사고로 33명의 광부들이 지하 700m 갱도에 갇힌 지 69일. 매몰광부 가운데 첫 번째로 구조된 아발로스는 그렇게 세상으로 돌아왔다. 수십 명이 산 채로 매몰되는 최악의 광산 사고로 기록될 뻔한 산호세 광산 사고가 기적의 생존 스토리로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차례로 구출되어 나오는 광부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생존의 기쁨을 나눈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며 벅찬 감동을 전했다. 아발로스의 생환과 함께 ‘비바, 칠레!’라는 함성이 울려 퍼지기까지 산호세 광산은 손에 땀을 쥐게하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초 12일 오후 8시께로 예상됐던 구조 개시 시점이 두 시간 뒤인 10시로 늦춰졌고, 신중한 점검을 위해 구조대원을 실은 캡슐‘불사조’는 예정 시각이 한참 지난 뒤인 11시 20분에야 천천히 지하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6분 뒤, 지하 광부들에게 도달한 구조대원인 마누엘 곤살레스가 33명의 생존자들과 포옹을 나눈 뒤 첫 번째 구조 대상자로 선정된 플로렌시오 아발로스가 캡슐에 올랐다. 두달 여 동안 암흑에 익숙해진 눈을 보호하기 위한 검은 선글라스와 산소호흡기, 통신장비 등 각종 안정장비를 착용한 아발로스는 캡슐이 지하로 내려간 지 51분 만에 성공적으로 구출됐다. 가족 및 피녜라 대통령과 뜨거운 포옹을 나눈 그는 곧바로 대기 중이던 의료진에게 응급처치를 받은 뒤 이틀 간의 정밀 건강 진단을 받기 위해 코피아포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캡슐은 다시 구조대원 한 명을 태우고 지하로 내려가 두 번째 광부인 마리오 세푸르베다(40)을 성공적으로 지상으로 끌어 올렸다. 그렇게 광부들이 한 사람, 또 한 사람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광부들의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광산 앞 ‘희망캠프’를 감싸던 숨막히는 긴장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환희의 웃음과 유쾌한 대화로 들뜬 축제 분위기가 가득 채웠다. 함성은 광산 밖에서도 끊이질 않았다. 인근 코피아포 시내의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1만명 가량의 시민들이 얼싸안으며 이웃과 친지의 생환을 기뻐했으며 칠레 곳곳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구조 장면을 지켜본 시민들도 감동의 순간을 함께 했다. 지난 2월 대규모 지진참사로 깊은 절망감에 빠졌던 칠레 국민들은 또 한 차례 닥쳐 온 최악의 재난이 최고의 감동과 희망을 안겨준 데 대해 한 마음으로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첫 번째 광부인 플로렌시오 아발로스가 지상으로 나온 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희망캠프라는 이름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이름이었다”며 “이곳에 담긴 정신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희망캠프를) 기념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33명의 광부에 대한 구조 작업은 총 36~48시간에 걸쳐 33명의 광부를 모두 지상으로 귀환시킨 뒤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