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태에 따른 국제유가 불안 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채권자산의 비중을 낮추는 등 금융위기 이후 지속돼온 디플레이션 시대의 종언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재무부의 자료를 분석해 물가연동 국채와 국채 10년물 가격으로 추산한 올해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2.28%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 4월 추산한 2.1%보다 0.18%포인트 오른 수치로 올해 1월 이후 최고치다. 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오르는 것은 경기회복세와 맞물려 소비자물가가 상승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2.1%로 2012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딘 마키 바클레이스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성장동력이 약하기 때문에 큰 폭의 물가상승률을 기대하기 힘들다"면서도 "다만 의료비·학비·집값 등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라크 내전으로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지속하는 것도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있다.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이달 들어 23일까지 각각 4%와 5% 이상 오르며 배럴당 107달러와 115달러를 넘어섰다.
CNBC는 이날 인도·인도네시아·한국 등 해외 원유수입 비중이 높은 아시아 국가들에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이 불가피하다고 보도했다. 인도가 이달 초 발표한 4월 도매물가지수는 전년보다 8.59% 올랐다. 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인도의 물가를 결정하는 최대 변수인 국제유가가 최근 급등한데다 가뭄으로 인한 작황악화로 물가상승 압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HSBC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인도의 경상적자는 0.5%포인트씩 확대된다"며 환율가치 하락과 수입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의 악순환을 경고했다.
그동안 투자자들의 뇌리에 박혀 있던 디플레이션 우려가 서서히 옅어지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가속되고 있다. 금리가 오를수록 가격이 떨어지는 채권자산을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다. 펀드정보 업체 EPFR에 따르면 지난 한주간 미국 채권투자펀드의 순환매 규모는 40억달러로 15주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 전세계 중앙은행들도 미국·영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에 대비해 장기채 비중을 줄일 계획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 보도했다. HSBC 등이 69개 중앙은행의 자산관리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다수가 보유채권의 만기를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표적 인플레이션 방어 투자 대상인 금에 대한 투자선호가 강해지고 있다. 금값은 이달 들어 온스당 5.8%나 올라 23일 기준으로 1,313달러를 기록했다. 은값도 같은 기간 10.5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릭 리더 블랙록자산운용 매니저는 "앞으로 몇달간 발표될 물가 관련 데이터들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기준금리가 빨리 오를 수 있다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