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새뮤얼슨 칼럼] 한국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폴 새뮤얼슨 (미 MIT대교수·노벨 경제학상 수상)새해 한국경제는 미약하나마 성장을 재개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외국인 투자가들의 신뢰가 회복돼 한국 주가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의 현상을 낙관적으로 비약시킨 것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개혁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다. 새해에도 한국 경제는 전세계에 걸쳐 일어날 각종 경제현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2000년 이후라야 비로소 97년 이전 상황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차라리 현실적이다. 이같은 분석의 배경은 이렇다. 97년은 아시아 경제에서 암울했던 해였고 98년에도 역시 아시아권과 중남미 국가 경제는 별로 호전되지 않았다. 새해 들어 유럽과 북미는 물론 아시아 경제도 강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지적하는 증거들은 없다. 오히려 세계경제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들이 더 많다. 경제학이 정확한 과학분야가 아니라는 점은 새삼 놀랄 일도 아니지만 요즘처럼 험난한 시기에는 미래 역시 불확실성이라는 두터운 구름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가을 미국 연방은행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리인하를 단행, 유럽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와 신용확대 노력에 동참했다. 이 조치는 선진국에 경기후퇴가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 취해진 것은 아니다. 아시아 등 신흥공업국으로부터 유입되려는 경기침체에 대한 안전조치였다. 경제사를 보면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사용, 경기변동을 조절하는 데 성공한 사례가 흔히 목격된다. 이 시점에서 인플레이션 문제가 비정상적으로 잠잠하다는 것은 중앙은행들에 큰 도움이 된다. 소비자들의 수요부족보다는 공급과잉 때문에 에너지와 생필품 가격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오일 쇼크, 농작물 파동 등이 있었던 지난 70년대의 공급 쇼크와는 전혀 다르다. 당시는 이같은 공급 쇼크와 함께 근로자들의 임금상승이 있었고 전세계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앓았다. 가격 인플레가 실업·생산감소와 공존한 이 현상 때문에 거시경제 정책의 이론적 기초마저 흔들리게 됐다. 8년간 호경기를 지속하고 있는 미국 경제는 올해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다. 2%대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하락할 것으로 보이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은 급격한 후퇴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 가계는 물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일본·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물론 미국과 유럽의 경기후퇴가 심해지면 전세계가 같은 병을 앓게 될 위험도 있다. 또 이 때문에 지난 87년 10월 블랙 먼데이와 같은 증시폭락이 초래될 수도 있다. 99년 1월1일을 기해 유럽퉁화통맹이 현실화했다. 유럽 11개 국가들에서 마르크·프랑·길더·리라·페세타 등 지역통화들은 유로라는 유일한 통화로 대체될 것이다. 동시에 분데스 방크 등 11개 중앙은행들은 사라졌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새로운 유럽중앙은행(ECB)이 수억 인구를 위해 안정된 신용정책을 펴게 됐다. 만일 몇년 안에 이같은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이들 중앙은행과 세관의 다양한 서비스가 유로화를 기준으로 한 단일 서비스로 대체될 것이다. 유로화 출범으로 유럽 경제가 급속하게 회복될 것인가. 이런 생각은 낭만적인 기대일 뿐 어느 누구도 앞으로의 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나는 유로화 전환기간 동안 약간의 혼란은 있겠지만 유로는 거래과정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본다. 아주 짧은 기간이나마 경기 붐도 예상된다. 별도로 시장의 힘이나 경기자극 정책이 없다면 이같은 붐은 차츰 소멸될 것이라는 게 경험칙이다. 올해 유럽 경제는 미국보다 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유로를 도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이 90년대에 미국보다 저조한 경제성장을 보였고 그래서 뒤늦게나마 양 지역간의 격차 해소가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현재의 자유무역정책을 유지한다면 평가절하로 경쟁력을 갖게 된 신흥공업국의 제품이 유럽 시장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올해 경기침체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마이너스 성장이 아닌 플러스 성장이더라도 극히 약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에 대해 아시아권 경제회복의 엔진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곤란하다. 한국·타이·필리핀의 입장에서 보면 아시아의 또다른 거인인 중국은 구세주이면서도 경쟁자다. 중국이 오랜 동안 구가해온 성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이 아시아권 경제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국제정치를 생각하면 올해 전망은 더욱 우울하다. 아프리카와 중남미는 심각한 자연재해를 겪고 있고 미국은 당파싸움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중동과 북한의 독재자는 그 나라 전체 국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 경제개발의 초기단계에 있는 이들 국가는 최근 대량 파괴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반면 이같은 위협적인 도전을 제한하거나 완화할 선도국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울한 정치전망 때문에 향후 세계경제는 더더욱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행히도 시장 메커니즘은 정치무대의 무정부상태와 무질서에 맞서 놀랄 만한 자체 관리능력을 보여왔다. 헨리 키신저 같은 비경제학자보다 존 메이나드 케인스 같은 경제학자가 필요하다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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