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만화`의 중국 내 성공을 계기로 나는 중국시장을 좀더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흑룡강성 조선민족출판사 박재구씨를 한국에 초청했다. 그는 흑룡강성 조선민족 출판사의 편집부문 부책임자 겸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문필가였고 개인출판도 하는 활동적인 분이었다.
그 역시 한국 책의 중국 내 출판과 중국도서의 한국수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한국 출판시장을 보여 주면서 상호 호혜차원의 사업방향을 모색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추진하게 된 것이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사는 연길에 우리 책을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를 확보하는 것과 한국책 전문 서점을 내는 일이었다.
박재구씨 주선으로 연길 연변인민출판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예림당 책 100권을 출판하기로 계약을 하는 한편, 이후 예림당 도서를 중국에서 한글로 펴낼 수 있는 독점권을 주었다. 우리가 받을 인세는 조선족 어린이를 위한 한국책 출판에 재투자하기로 했다.
또 현지 서점의 판매수익도 국내로 회수하지 않고 합자출판 자금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한중 합자서점 `예림당서사`는 공간 마련이나 중국에서 낸 한글판 도서의 확보는 박재구씨가, 나는 한국도서의 공급을 맡았다. 그 후 나는 동포들이 주로 찾는 일반 도서들과 예림당 어린이책을 중국으로 보냈다.
그러나 정식으로 책을 거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박재구씨 연고지역인 흑룡강성 목단강시에 문을 연 예림당서사는 30여평으로 보유한 책들은 530여종에 6만부가 넘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제법 규모가 큰 동네서점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 중국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사영(私營) 서점으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유례가 없던 한글책 전문 서점이었다.
한국에서 보낸 책은 중국 실정에 맞추다 보니 종이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없는 가격이 매겨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기대한 것이 아닌데다가 장기적으로는 예림당서사를 발판으로 중국에 저작권 수출은 물론, 현지 직접 출판의 교두보로 삼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95년 5월7일 개점을 위해 회사 직원들과 중국진출에 관심 있는 몇몇 출판인들은 하루 전 현지에 도착했다. 나와 흑룡강성 고위 관료가 테이프커팅을 하는 것으로 개점행사는 시작됐다. 최초의 한중합작서점으로 현지언론에 보도된 탓이었던지 동북 3성 등에서 조선족 인사들은 물론 많은 중국인들이 참석해 성대하게 치러졌다.
눈물을 글썽이며 `중국에 이런 서점이 생기다니 너무나 반갑고 고맙다`며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히는 동포들의 말에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 풍물놀이가 흥을 더해 주었고 푸짐한 음식과 술은 축제의 열기를 더해 주었다. 중국내 예림당서사 오픈 소식은 국내 여러 신문에도 소개되었다.
<우현석기자 hnskw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