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94> 박수 쳐 주고 싶을 때


연고전 또는 고연전은 우리나라 두 명문사학끼리의 축제다. 기자는 그중 한 학교의 보직을 하고 있었던 K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K교수 상대 학교에서 학부를 졸업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해마다 ‘연고전’ 또는 ‘고연전’을 할 때면 그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대학을 응원해야 할지, 아니면 과거의 모교를 응원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곤 했단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속 대학을 응원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축제 후 뒷풀이에서 재직학교 동문회 임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술자리를 가진 뒤 긴장을 풀렸던 K교수는 농반진반으로 모교를 응원하는 구호를 외쳤단다. 그런데 금세 주변은 싸늘해졌고 ‘당신은 눈치도 없냐’는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모교에 대한 K교수의 ‘박수 쳐 주고 싶은 심리’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속 마음을 숨겨야 하는 때도 있다. 더욱이 공적 신분을 지닌 사람이라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해야 마땅하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최근 언행은 바로 자신의 직분을 망각한 나쁜 사례에 해당한다. 새누리당 연수 프로그램에서 강사로 초청받은 정 장관은 내년 4월 총선에서의 ‘필승’을 운운했다가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휘말렸다. 물론 정 장관의 발언이 선거의 향배에 미칠 영향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선거에 대해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하는 행정자치부 장관으로서는 언어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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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정 장관의 ‘실수’는 ‘박수 쳐 주고 싶은 심리’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생각한다. 행정부의 각료의 한 사람으로서 집권 여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정 장관의 망언망동은 그 자신이 스스로 어떤 집단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지가 무의식중에 드러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정치시스템은 의원내각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원이 장관을 하기도 하고 장관이 의원 후보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전직 장관들이 공천을 받았고 현재 내각의 멤버 중 4명이나 전현직 국회의원이다. 그러니 정 장관 자신도 총선을 위한 공천을 앞둔 현 시점에서 집권 여당의 유력한 ‘의원 후보’ 중 한 사람인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정 장관의 ‘박수 쳐 주고 싶은 마음’은 미래의 자기 모습을 현재에 투영한 결과는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물론 ‘팩트’(fact)는 아니다.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다. 검찰이 정 장관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다니 시간이 지나면 가려질 일이다.

잠깐 동안의 퇴직 생활 이후 ‘로펌’을 거쳐 다시 장·차관으로 돌아온 공직자들도 ‘박수 쳐 주고 싶은 심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묘사되었던 것처럼 숱한 법무법인들이 퇴직 관료들에게 아름다운 노후생활과 영혼의 안식을 제공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기사로 나오는 연봉만 접하자면 깜짝 놀랄만한 액수다.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손가락질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를 생각하는 공직자라면 직분을 망각한 망동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꿈이 있고 양심이 바로 선 공직자는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소중히 여기며 현재 직무에 충실할줄 안다. 자신의 사사로운 미래 이익을 염두에 두고 현재의 직분을 악용하는 자는 공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 부적절하게 ‘박수를 쳐 주고 싶은 마음’이 요동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는 꿈과 양심이 있는 공직자인지.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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