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과 사랑 ■ 혀 / 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강동효기자 kdhyo@sed.co.kr '나는 요리하고 사랑해야만 한다. 그것은 두 가지 일이면서 동시에 한 가지다. 이것이 내 운명이다.' 조경란이 6년 만에 내놓은 장편 소설 '혀'는 사랑에 버림받은 요리사의 이야기다. 스무 살 때부터 이탈리안 요리 전문학교에서 요리를 배운 뒤 현재 쿠킹 클래스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요리사 지원. 7년 동안 남자 친구 석주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에게 위기가 닥친다. 그녀의 주방에서 석주와 쿠킹 클래스 수강생이자 전직 모델인 이세연이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한 것. 석주는 지원을 만나기 전부터 키웠던 개까지 버려둔 채 세연에게로 떠나버린다. 홀로 남겨진 지원은 석주와 한참 사랑하던 시절 일했던 레스토랑 '노베'로 돌아간다. 소설은 이후 본격적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혀의 미의식을 표현한다. 지원이 석주와의 만남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재생되는 1~7월의 월별 요리는 독자의 침샘을 마구 자극한다. 로스트 비프와 구운 아스파라거스, 어린 시금치 뿌리를 올린 오리 가슴살 구이, 허브와 양상추를 곁들인 샌드위치… "다 읽고 나면 입에 군침이 돋게 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다. 강렬하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 구성과 더불어 섬세하고 세밀한 문체와 비유도 인상적이다. '고독이라든가 슬픔 혹은 기쁨 같은 것을 요리재료로 표현할 수 있다면, 고독은 (허브) 바질이다. 위에 좋지 않으며 눈을 침침하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한다… 기쁨은 (향신료) 샤프란이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아무 때나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니다.(31쪽)' 작품 속 화려한 요리의 성찬은 잔인한 복수 이야기로 급변한다. 한 때 석주와 지원의 꿈이었던 새 집과 쿠킹 클래스를 완성한 석주와 세연의 행복한 사진을 지원이 보게 된 것. 지원은 혀를 녹여버릴 만큼 맛있는 요리를 단 한 사람을 위해 준비한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요리의 세계 속에 숨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사랑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입력시간 : 2007/11/16 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