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보따리를 싸게 할 건가

물론 개인적이었던 느낌을 말하는 거다. 지난 88년 5공 청문회. 더벅머리 노무현 의원은 어쩐지 남달라 보였다. `청문회 스타`라는 말로 세상이 후일 그를 띄워주었지만 그 색다름의 실체가 그런 의미로서는 아니었다. 다른 이들의 증인 추궁이 결국 정치행위의 범주였다면 정치 신인 노무현 의원은 한 인간으로서 그릇된 세상사에 맞서는 듯 보였다. 소외의 차디차고 쓰라린 경험을 한 자만이 가질 듯한 눈빛으로 세상의 모순에 대한 분노감을 토해갔다. 15년이 흘러 그가 마침내 천하를 거머쥐었다. 이 나라에 분명 소리 없는 혁명이 일어난 거다. 노 후보 지지자들에게 새로운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집권 8개월. 그 푸르던 희망의 불씨가 실망의 어둠 속에서 꺼져가는 정황은 이제 이 나라 곳곳에서 일상이 돼가고 있다. 15년 전 인간 노무현이 적개심으로 바라보던 바로 그 일단의 세력들이 이제 거꾸로 노 대통령을 향해 쏟아내는 야유를 들으며 한국정치에 절망하고 있다. 민주화를 거스르던 자들로부터 들리는 `민주` `국민을 위하여`라는 말의 성찬에 욕지기를 느끼며 그 기름 낀 목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지금 이 시대가 얼마나 혼돈의 상황인가를 절감하게 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그 뿌리가 바로 대통령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화살은 청와대를 향한다. 그 혼돈의 토양을 마련해준 장본인이 대통령이라는 데에 지지자들조차 치미는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노 정권 8개월간을 정리해보면 통치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가 여간 마땅치 않다. 시스템과 효율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그때그때 사안별로 대통령 개인의 정치ㆍ사회적 감성에 따라 국정은 우왕좌왕했다. 일부 수구 언론을 필두로 절대권력 앞에 비굴했던 세력들이 여론몰이에 앞장, 콘트롤 타워는 더욱 방향성을 잃고 정부는 거기서 거기인 수준의 졸렬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전무한 경험의 외교 분야가 그나마 나은 반면 주종목인 정치 쪽에서 대통령이 판판이 낙제점을 받고 있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경제는 경제대로 정치논리에 대한 대통령의 강박적 집착 속에 뒷전으로 밀리며 민심 이반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청문회적 시시비비는 톱의 자리에서 취할 방식이 아니다. 대통령이 분노감과 오기를 표출한 채 과거 청문회적 정서로 국가를 통치해나간다면 문제해결은 요원하다. 명문대 출신에, 가진 자만이 이 나라 중심에 설 자격이 있다는 오만함이 노 대통령 자신의 실정(失政)으로 인해 옳은 것으로 입증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국정운영의 당당한 결과를 갖고 대통령은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난데없는 `자해성` 신임투표 제의는 결코 정당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국민의 선택에 떠넘길 게 아니라 자신의 실력으로 승부해야 했다. 현 정부는 누가 뭐래도 이 나라의 변증법적 성숙과정 속에서 그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받은 정권이다. 사리사욕에 눈먼 수구 세력들이 자신들 존립의 당위성을 외쳐대며 다시 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반(反)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어느 당의 집권 따위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옳을 것도 그를 것도 없는, 그렇게 마구 뒤섞여 도무지 정체성이란 실종된 정신과 문화의 아노미적 상황을 후대에 물려줌은 나라를 근본적으로 절단하게 하는 일이다. 이렇게 마구 굴러가다 이 땅이 또다시 국민이 주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의 판으로 돌아간다면 보따리를 싸야 하는 건 청와대 누구누구만이 아니다. 나라꼴에 염증을 느낀 이 나라 백성들, 보통 사람들의 한반도 엑소더스가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 책임감을 대통령이 느껴야 한다. <홍현종(국제부장) hjh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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