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미술품 감정제도 개선책은 없나] 작가별 전문가 육성 시급

<하>체계적 작가 연구가 해결 출발점<br>외국선 수십년 걸리더라도 '정밀감정' 진행<br>작가 재단·장기적 연구 재정 마련도 절실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들' 원작(오른쪽)과 이의 구도를 모방한 위작.

잊을 만 하면 또 터져 나오는 미술품 위작 문제. 무엇보다 작가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자료 부족으로부터 기인한다. 감정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도 결과를 뒷받침해 줄 근거가 결여된 까닭이다. 서양에서도 종종 위작 시비가 터지곤 하지만 대처하는 자세가 다르다. 해당 작가에 대한 연구를 평생에 걸쳐 지속해 온 전문가들이 철저한 조사와 함께 상황을 정리한다. ‘진주 귀고리의 소녀’로 유명한 베르메르의 위작사건은 16년 만에 해결됐으며, 렘브란트의 위작을 조사하기 위해 결성된 ‘렘브란트 리서치 프로젝트’는 40여년째 진행중이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 학예연구사는 “외국에서는 수십 년에 걸친 작가 연구가 당연히 여겨지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미술품 감정은 시간이 걸려도 진행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작가의 작품을 관리하는 재단(foundation)도 감정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 재단은 화가의 일대기에 대한 연구, 즉 모든 작품의 목록 관리부터 소장 상황 파악, 작품의 수리 보수 복원까지 일괄 담당한다. 앤디 워홀 재단,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 스위스에 있는 자코메티 재단 등은 진품임을 확인하는 스탬프(일종의 도장)를 발급할 정도로 권위를 확보하고 있다. 또 전문가들에 의해 작성된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는 진위감정에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최근 국내 전시가 열린 모딜리아니의 경우 체로니(Ambrogio Ceroni)가 집필한 카탈로그 레조네에 수록된 작품만이 진품으로 인정 받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카탈로그 레조네를 확보하고 있는 화가는 장욱진 정도가 고작이다. 지속적인 작가연구도 부족해 “박수근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박수근 미술관이 정작 박수근의 진품도 갖고있지 않다”는 한숨어린 푸념까지 나올 정도다. 따라서 국내 감정시스템이 권위를 얻기 위해서는 장기적 작가 연구가 우선돼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들이 사용한 재료 연구, 호암미술관은 작가에 대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작가 본인과 주변 인물을 만나 증언을 기록하는 ‘구술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개별 화가에 대한 전문가 육성이 절실한 반면 장기 연구를 위한 재정적 기반도 취약하다. 작가별로 재단을 만들기가 어렵다면 정부가 작가를 선정해 자금의 일부를 지원하는 ‘한국식 작가 재단’을 만드는 노력을 시도해야 한다. 국내 감정기관이 화랑 소유주의 주도로 운영된다는 것은 감정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시스템적 요인이다. 하지만 문화선진국으로 꼽히는 외국에서도 시장을 이끄는 상업주체가 감정에 깊이 관여하고는 있다. 영국의 경우 전문 감정에 크리스티와 소더비와 같은 경매회사가 나선다. 미술품 기부에 세제 혜택이 주어지는 미국도 ‘감정협회’ 등 대부분 감정기관이 영리로 운영된다. 다만 이들은 오랜 기간 쌓아온 연구 업적과 성공적인 감정 사례, 소속 감정사의 명성 등으로 위상을 인정 받는 만큼 우리 감정기관의 현실과는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또한 국내 감정 전문가의 절대 인력 부족 및 노령화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프랑스의 경우 감정 전문가가 1만6,000명에 달하는데 국내는 15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진품에 대한 오랜 경륜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은 감정사들이 후진 양성에 소홀해 전문가의 명맥을 잇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명지대ㆍ경기대 대학원 등에 감정관련 학과가 개설됐으나 이들이 실제 전문 감정사로 활동하려면 수년에 걸친 안목과 경험과 요구돼 후진 양성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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