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영화리뷰] 아버지의 이름

'조작된 전쟁영웅' 그 황폐한 이면


‘영웅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영웅이란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가.’ 할리우드가 쏟아낸 영화들 속에서 ‘조작된 영웅주의’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영화 ‘황야의 무법자’ 이후 영웅 전문 액션배우로서 인생을 살아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조작된 영웅주의를 매섭게 고발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의 한 작은 돌섬 이오지마. 미군은 섬 정상에 승리의 깃발을 꽂는다. AP통신 사진가 조 로렌탈이 찍은 이 사진은 미국 전쟁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 오랜 전쟁에 지친 미국인들은 이 사진 한 장면에서 달콤한 희망을 맛본다. 사진은 ‘미국의 승리’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사진 속 병사들은 순식간에 대중 영웅이 된다. 전쟁 자금이 고갈돼 가던 미국정부는 미소를 짓는다. 이 기회를 활용해 전쟁자금을 모으려 한다. 하지만 ‘이오지마의 깃발’ 사진은 영웅의 모습도 아니요, 전쟁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도 아니었다. 사진 속 깃발 꽂는 장면은 군대 내부의 권력투쟁 가운데에서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연출된 장면. 이오지마 전투는 미군이 6,821명이나 희생된 뼈아픈 전투였다. 하지만 대중에게 이런 사실은 알려지지 않는다. 오직 ‘미국의 승리’라는 이미지만 전달된다. 영화는 사진 속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공도 없이 얼떨결에 대중 영웅이 된 존 닥 브래들리(라이언 필립), 아이라 헤이즈(아담 비치), 레니 개그논(제시 브래포드) 세 병사들을 내세운다. 이들은 전장의 전우들을 두고 정작 영웅행세를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무너져간다. 하지만 전쟁영웅 이미지를 철저히 이용하는 미국정부는 이들의 이런 좌절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조작된 영웅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중들에게 격리된 무대 이면에서 “전쟁에서 제가 본 것들, 제가 한 것들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에요”라고 울부짖는 것뿐. 영화는 종전 이후 이들이 철저히 잊혀지는 모습을 통해 “영웅은 우리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결론 맺는다. 그리고 “진정 그들을 기린다면 그들의 참모습을 기억해야 한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덧붙인다. 만들어진 영웅 대신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진짜 위대함을 찾아야 한다는 마지막 메시지 울림은 깊고 강력하다. ‘아버지의 깃발’은 스티븐 스필버그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합작품이기도 하다. 당연히 스필버그의 향기가 강하게 풍긴다. 영화 속 전투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떠올리게 할 만큼 사실적이며 장대하다. 두 감독은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한 일본인 병사 눈으로 2차 대전을 바라본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함께 제작해 영화의 균형을 맞췄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