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朴대통령 저격사건 외교문서 공개<br>당시 수사요원 "짐작은 가지만 밝힐수 없다"<br>문세광 검문없이 행사장 진입도 의문으로 남아
|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의 범인 문세광. 1974년 8월15일 문세광이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 29주년 기념식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했지만 육영수 여사가 피격돼 사망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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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나라 전체를 충격과 전율로 몰아넣었던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이 일어난 지도 30여년이 지났지만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저격 사건의 주역인 문세광이 사건 129일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사건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하직하면서 의혹은 풀리지 않은 채 ‘미궁’으로 빠져 들고 있다.
역대 정부와 국가기관 등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지 25년이 지났건만 어느 곳 하나 선뜻 사실 규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실체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 이건우. 당시 사건 직후 현장 검증을 하고 수사본부 요원으로 참여한 그는 (당시 서울시경 감식계장) “육영수 여사를 숨지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나 지금은 밝힐 수 없다”는 말만을 남긴 채 지난 99년 세상을 등졌다.
왜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고 정부 기관들은 아직도 ‘쉬쉬’하고 있는 걸까. 역사의 시간 속에 오롯이 남아있는 의혹들을 살펴본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의혹은 역시 누가 육 여사를 맞혔냐 하는 점이다. 당시 수사발표에 따르면 사건 당일 현장에서 울린 총성은 모두 7발. 문세광은 5발이 장착되는 스미스 웨슨(일명 리볼버) 권총을 사용해 모두 4발을 발사했다.
나머지 한 발은 권총 약실에 그대로 남았다. 대법원도 문씨가 발사한 1탄은 오발(자신의 허벅지), 2탄은 연단, 3탄은 불발, 4탄은 육 여사, 5탄은 태극기에 맞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당시 수사본부 요원이었던 고 이건우씨는 지난 89년 월간 ‘다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뒤집는 증언을 했다. 그는 “현장검증 전 이미 청와대 경호실에서 탄두를 수거해갔다”며 탄흔에 기초해 제1탄은 오발, 2탄은 연단, 3탄은 태극기, 4탄은 천장에 맞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비교해 보면 일치하지 않는 한 발을 두고 수사발표에서는 육 여사를, 이씨는 천장을 맞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극장을 크게 울렸던 7번의 총성 중 문씨에 의한 것이 아닌 나머지 3발을 과연 누가 어디에서 쐈느냐가 여전히 논란거리다.
경호원이 쏜 총탄이 합창단원 장봉화 양을 맞혔지만 나머지 두 발의 ‘행적’이 묘연한 것. 당시 탄착지점은 오발로 인한 문씨 자신의 허벅지, 육 여사, 합창단원 장양, 연단, 태극기, 천장 등 모두 6군데였다.
수사발표에서의 7번의 총성과는 다르지만 불발탄을 계산했을 수도 있다. 요컨대 수사발표대로라면 경호원이 쏜 총탄 중 2발은 천장과 장 양을, 이씨의 주장대로라면 ‘제3자’의 총탄 중 2발은 장양과 육 여사를 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 여사는 다른 사람이 살해했을까. 문세광은 육 여사가 봤을 때 오른쪽인 행사장 좌측 뒷좌석에서 앞으로 뛰어가며 총탄을 발사했다.
따라서 머리에 총탄을 맞은 육 여사의 머리는 (관객석에서 봤을 때) ‘오른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저격 뒤 육 여사의 머리는 반대로 ‘왼쪽’으로 넘어와 있었다. ‘제3의 저격수’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또 문씨가 저격한 뒤 무대 왼쪽에서 한 명이 단상 위 육 여사 쪽으로 뛰어올라가 여사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뒤로 숨는 듯한 모습을 취했다.
동시에 경호원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한 명이 앞서 올라간 사람 뒤에서 권총을 겨냥하고 있었는데 총구가 육 여사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광복절 경축사를 하는 대통령 행사장에 출입비표도 없이 들어갈 수 있을까. 문씨는 행사 당일 포드20M이라는 고급리무진 한대를 빌려 타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당초 행사장에는 수많은 경찰이 배치됐고 ‘승차입장’이라는 비표가 없는 차량은 통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행사장으로 향하는 차량을 검문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문씨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갈 때 역시 검문이 없었다. 당시의 정황들을 밝힌 문서들이 공개된 지금도 계속되는 의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