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죽는다" 한국기업들 목숨 걸고…
[콘텐츠 빅뱅시대 온다] "미래 성장 중심축"… M&A·제휴로 킬러 콘텐츠 개발에 사활 시장 선점이 살길넷플릭스·애플·아마존 자체 상품 만들기 분주SKT' SK플래닛' 분사·KT는 전문회사 설립삼성·LG도 미디어콘텐츠 등 확보에 공들여
양철민기자 chopin@sed.co.kr
"콘텐츠가 왕(King)이다." (빌 게이츠 1996년)
"미래는 윈도가 아닌 엑스박스다." (스티브 발머 올 9월)
16년의 간극이 있지만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의 말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향후 시장 전략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바로 콘텐츠를 핵심전략으로 삼는다는 것. 발머는 플랫폼 성격의 윈도가 아닌 게임과 같은 콘텐츠를 차세대 매출원으로 본 셈이다. 실제 MS의 '엑스박스360'은 지금까지 미국 시장에서만 7,000만대가량 팔리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채 안 되지만 동작인식기기 '키넥트'와의 결합상품 등으로 성장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상황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콘텐츠시장을 잡기 위해 글로벌 정보기술(IT)업체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콘텐츠 없이는 미래성장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영화 서비스사인 넷플릭스가 최근 처한 상황은 콘텐츠의 위력을 보여준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만 2,5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승승장구하는 듯 보이지만 자체 콘텐츠가 부실해 고민에 빠져 있다. 지난 2010년 소니픽처스나 디즈니와 같은 콘텐츠업체에 지불한 금액이 2억달러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연 매출이 40억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가량을 콘텐츠비용으로 지출해야 하는 셈. 이 때문에 영화 '소셜네트워크'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를 내세워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글로벌 IT업계의 강자인 애플ㆍ아마존도 예외는 아니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ㆍ아이튠즈와 연계한 스마트TV 'iTV'를 출시하는 등 콘텐츠 강화에 몰두하고 있고 아마존은 자체 콘텐츠 확보를 위해 최근 드라마 제작을 위한 시나리오 공모전을 진행했다. 신재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애플이 TV시장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콘텐츠 확보가 미진한 원인이 가장 크다"며 "콘텐츠가 향후 IT시장의 주요 화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내 이동통신사 및 단말기 제조업체가 콘텐츠 확보에 적극적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0월 SK플래닛을 분사하며 콘텐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SK플래닛은 올 들어 모바일 메신저 '틱톡'을 만든 매드스마트를 인수하고 자체 콘텐츠 개발 및 융합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모바일 콘텐츠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KT는 오는 12월 분사 예정인 미디어 콘텐츠 전문회사를 세워 통신뿐만 아니라 콘텐츠시장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방침이다. 최근에는 음원 서비스업체인 KMP홀딩스를 인수하며 몸집 키우기에도 적극적이다. 이석채 KT 회장은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글로벌 미디어 콘텐츠 유통기업'으로의 도약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국내 이통사들은 자체 앱장터를 통해 개발자와 함께하는 생태계를 구축, 콘텐츠를 확보하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전윤호 SK플래닛 플랫폼기술원장은 "향후 콘텐츠와 플랫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를 대비해 개발자 및 콘텐츠 제작자와 공생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제조사는 인수합병(M&A)ㆍ제휴를 통해 콘텐츠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LG전자는 계열사인 LG유플러스와 함께 구글TV를 선보이며 콘텐츠 차별화에 시동을 걸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클라우드 콘텐츠 서비스업체인 엠스팟을 인수해 클라우드형 음악 서비스를 선보였고 콘텐츠를 담당하는 미디어솔루션센터장으로 부사장급인 홍원표 무선상품전략팀장을 발탁하는 등 콘텐츠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브스는 삼성전자가 넷플릭스와 게임업체 일렉트로닉아츠(EA), 인터넷기업 인터액티브코프(IAC) 등 3곳의 콘텐츠업체를 인수해야 IT업계의 진정한 강자로 설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만큼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하면 지금 아무리 잘나간다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2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통신ㆍ제조사는 물론 모든 ITㆍ미디어업체가 킬러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국내 최대 콘텐츠사업자인 CJ E&M의 경우 영화, 드라마, 음악, 공연 서비스 등을 바탕으로 국내외시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황도연 오비고 대표는 "앞으로는 플랫폼이나 기기가 아닌 콘텐츠가 IT시장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콘텐츠 확보도 중요하지만 양적 팽창에만 주력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IT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면 콘텐츠의 질적 향상보다는 숫자싸움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확실한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