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1부. 금융의 미래를 고민하다] <4> 카드, 새로운 먹거리 안겨줘야

■ 리빌딩 파이낸스 2014<br>카드대란 원죄에 손발 묶여… 실탄 쓸 수 있게 부수업무 허용을<br>당국 규제일변 정책에 오히려 수익성 악화<br>조정자기자본은 과잉… 굴릴 곳 없어 묵히는 셈<br>업계도 정부 탓만 말고 성장 논리 개발 나서야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자 카드업계는 장탄식을 내뱉어야 했다. 금융위는 캐피탈업계에 대해서는 금융업 부수 업무를 현행 열거주의에서 '원칙허용ㆍ예외금지'로 전환하고 신고제로 변경하기로 했다. 그러나 카드업계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혹시나' 했던 카드업계의 바람은 이번에도 '역시나'로 끝났다.
카드업계는 지난 2003년 '카드대란'을 야기하며 국가경제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간 '원죄'를 갖고 있다. 이 원죄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업계를 짓누르는 짐이 되고 있다. 금융위가 카드업계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부수업무 확대를 또다시 외면한 것도 결국 카드업계가 지은 원죄에 대한 징벌이나 다름없다.
금융당국의 규제 일변도, 그리고 금융당국에 끌려 니기만 하는 업계의 나태함과 이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표류하고 있는 게 카드업계가 마주한 현주소다.
한 전업계카드사 고위관계자는 "산업이 발전하려면 성장성이란 게 보여야 하는데 금융당국의 그늘에 놓인 카드산업은 그런 게 전혀 없다"며 "정부가 바뀌지 않는다면 업계부터가 치열한 논리를 개발해 당국의 문을 두드리는 용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막바지 접어든 카드산업 수술작업…새로운 먹거리 없다=정부가 지난 2년간 의욕적으로 추진한 카드산업 대수술 작업은 이제 막바지 단계에 진입했다. 수술이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면 회복 기미가 보여야 하지만 카드산업만큼은 예외다. 규제 일변도가 낳은 것은 수익성 악화라는 초라한 결과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년 1~9월 7개 전업카드사의 당기순이익은 1조3,62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520억원 감소했다. 주식매각 이익 등 일회성 요인이 전년동기 대비 크게 감소한 데 따른 것이지만 카드 대출금리 추가 인하, 조달금리 상승 여지 등으로 내년에도 수익성 악화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없다는 사실이다. 카드업은 결제수단 기능뿐 아니라 여행·통신판매·인터넷쇼핑몰 제공 등 생활편의서비스업적 특성을 가진다. 은행 다음으로 민원이 많을 정도로 소비자들이 카드사에 요구하는 바가 많은 이유다. 카드사들은 소비자의 요구에 저렴한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부가수익 확보로 각종 수수료 인하여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가맹점수수료 체계개편, 카드대출금리 산정 모범규준 적용 등으로 여신금융회사의 수익성은 날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이다.

◇시장개척 의지 꺾는 규제=실탄은 있지만 사격할 곳이 없는 총. 카드업계의 현실을 말할 때 곧잘 쓰이는 표현이다.

실제 전업카드사의 조정 자기자본비율은 2013년 3·4분기 말 현재 27.9%다. 카드대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2002년 12.44%에서 15.46%포인트나 높아졌다. 이는 은행지주회사의 연결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13.26%보다 14.64%포인트만큼 높다.

카드대란 전후를 비교해보면 조정 자기자본비율은 12.44%에서 -5.49%로 17.93%포인트가량 폭락했는데 이제는 28%에 달하니 2차 카드대란이 일어나도 견뎌낼 체질이 된 셈이다.


업계는 오히려 과잉상태인 자기자본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업무범위를 확대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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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현재 전업카드사의 조정 자기자본은 21조2,000억원(27.59%)인데 이 비율을 20% 수준으로만 맞춰도 여유자본이 5조8,000억원이다.

이를 기반으로 차입하면 현재(76조9,000억원)보다 29조2,000억원의 자산을 더 굴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카드업계 고위관계자는 "총부터 총알까지 자금이 쌓였지만 부수업무 불허라는 잠금장치 때문에 격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언제까지 정부 탓만, 카드업계도 변해라=금융당국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9월 금융위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컨설팅 서비스 △디자인권과 상표권 사용 △직원과 소비자 대상 금융교육 △지급결제 대행업 등을 추가 부수업무로 허용했다.

카드업계는 부수업무를 열어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지만 이 같은 태도로 금융당국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쉽게 말해 정부의 입장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업계부터 변하려는 모습을 보이라는 얘기다.

얼마 전 만난 금융당국 관계자는 "카드사들은 늘 돈 벌기 힘들 것이라고 떠들지만 실적을 보면 예상보다 잘 견디고 있다"며 "결국 이는 카드사들의 엄살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는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아이디어라면 언제든 들을 준비가 돼 있는데 카드사들에는 그런 의지가 없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카드업계가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긍정적인 것은 최근 들어 카드사들이 변하고자 하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게 '빅데이터 활용'이다. 예컨대 신한카드는 업계 최초로 빅데이터센터를 구축했고 롯데카드의 경우 롯데멤버스카드를 통해 고객 정보들을 대거 농축시켜놓았다. 한 민간연구소 전문가는 "시장에서 뛰어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아무리 철옹성 같은 정부라도 변하게 돼 있다"며 "빅데이터 활용 의지는 한 예일 뿐 이런 식의 발전적 논의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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