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문 좀 열어주세요




일요일이었던 지난 13일 인근 대형마트에 갔다가 낭패를 봤다. 아들녀석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라대서 모처럼 마트를 찾았는데 그만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공교롭게 한 달에 두 번 쉬는 대형마트의 일요일 휴업에 딱 걸린 것이다. 아이는 실망감에 울먹였고 나중에 꼭 사주겠다고 달래 발길을 돌렸다. 일 보러 나갔다 뒤늦게 돌아온 아내는 휴점일을 확인 안 한 남편을 탓하다가 "마트가 일요일 쉰다고 사람들이 전통시장에 가지는 않을 것 같다"며 "이 제도가 시민을 불편하게만 했지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좀 고쳐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유통 담당 부장으로서 머쓱하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도 아내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날 문앞을 지키던 마트 직원에게 들어갈 수 없냐고 재차 묻던 어떤 할아버지를 비롯해 허탈해하던 손님들이 과연 발길을 돌려 전통시장으로 향했을까.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요새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결론 나는 분위기다.

대형마트 일요 휴무 실효성 의문

대형마트가 매월 2회 일요일에 강제로 쉬는 규제는 2012년 4월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해 시행됐다. 전통시장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자는 취지였지만 시행 2년이 지났음에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대형마트 매출 급감에도 전통시장이 받은 혜택은 미미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빅3의 매출은 유통법 시행부터 지난 2·4분기까지 9분기 연속 하락했다. 3사의 지난해 매출 감소분은 무려 1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전통시장 매출도 줄었다. 시장경영진흥원이 조사한 전통시장의 일평균 매출액은 2010년 4,980만원에서 2012년 4,502만원으로 감소했다. 지난해는 더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불경기다 보니 대형마트를 찾지 않은 소비자가 전통시장도 외면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내수와 고용의 핵심인 유통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수많은 중소 납품업체의 재고가 쌓여가고 수천명의 생계형 일자리가 사라지는 아찔한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 탁상행정 규제가 기업성장을 가로막고 이로 인해 투자가 줄면서 내수에 찬물을 끼얹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의무휴무는 '상생(相生)'이 아니라 '살생(殺生)'제다" "누구를 위한 규제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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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뻔하다. 처방이 잘못됐으면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대수술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다른 처방을 내리는 것도 의사의 도리다. 의무휴무제의 방향에 오류가 생겼으면 살짝 방향키를 조절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대립각을 세웠던 지자체와 대형마트, 중소상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대로 가면 공멸을 피하기 어렵다 보고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향키 조절은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의 변경이다.

김포시가 9일 의무휴업일을 매월 둘째·넷째 일요일에서 둘째·넷째 수요일로 변경했다. 남양주시도 4월부터 의무휴업일을 수요일로 바꿨고 파주시·고양시·오산시·강릉시 등도 동참하는 등 전국 18개 지자체가 평일 휴무일을 운영 중이다.

아직 초기지만 대형마트·전통시장과의 '진정한 공존'은 내수 부양에 무게를 둔 최경환 경제팀 출범에 맞춰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요일 변경 등 정책 방향 조정을

마침 14일 박근혜 대통령이 "새 내각이 출범하면 무엇보다 민생경제를 살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며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규제개혁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역시 내수 살리기에 올인하겠다며 걸림돌은 도려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학창시절에 즐겨 읽었던 장자의 책에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는 우화가 있다. 학의 다리를 짧은 오리 다리에 맞추기 위해 자르는 행위는 편협하고 어리석은 판단이라며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내수 부진의 늪에 빠져있는 유통가에 어느 때보다 장자의 지혜로운 안목이 필요해 보인다.

/홍준석 생활산업부장 jsh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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