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첫 장만 넘기고 그림을 배워도, 음악을 배워도'잠깐'이었어요. 스무 살까지 이것 저것 벌여놓기만 하고 끝맺지 않은 것들, 이제껏 해 왔던 일들을 밖으로 꺼내 정리하고 싶었죠. 미술·음악·글쓰기·연기를 한번에 아우르는 게 연출이고 영상인 것 같아요."
박중훈, 유지태, 하정우, 윤은혜 등 최근 한국 배우들의 감독 데뷔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구혜선(28·사진) 역시 일찍이 이 대열에 합류한 배우다. 그의 행보는 조금은 남달랐다. 배우, 감독 외에 작가, 화가,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더 보탰다. 구혜선은"의도한 건 아니지만 다방면에서의 활동이 궁극에는 영상 연출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요술'(2010)에 이어 두 번 째 장편 영화'복숭아나무'로 관객을 찾는'감독'구혜선을 마주했다.
영화는 하나의 몸, 하나의 심장에 두 개의 얼굴과 인격을 지닌 이들이 겪는 갈등과 그 속에서 깨닫게 되는 사랑의 의미를 감성적으로 담아낸다. 영화 연출에서 자신이 가진 경쟁력을'독특한 소재 선정'이라 꼽는 구혜선은'샴 쌍둥이'라는 생경하고 참신한 소재를 영화 속에 끌어온다.
"20대 중반 무렵 소위'오춘기'가 오더라고요.'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나'에서부터 인간의 양면성까지 한창 고민이 많을 때였죠. 이런 고민을 함축적으로 담을 캐릭터를 만들려고 하다가 샴 쌍둥이에서 아이디어를 얻게 됐어요."
영화는 두 형제의 자아 충돌과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동화적 감성으로 접근한다."이 영화는 판타지에 가까워요. 두 사람이 한 몸이지만 혐오스럽지 않게 표현하려고 했고, 비현실적인 부분에 관객이 불편함을 덜 느끼게 하고자 노력했어요."
감독 구혜선만의 독특한 미장센이 영화 속에 녹아있기도 하다. 동화적 색채로 이어지던 화면은 극의 중반 무렵 다소 공포스럽고 스산한 분위기로 전환된다."다른 이들이 두 형제를 처음 대면했을 때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신인 감독 구혜선에게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 보이는 것보다 그 내면에 돋보기를 끊임없이 들이대고 싶어하는 열정이 가득해 보였다. 제대로 성취한 분야 하나 없이 감독을 비롯해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현재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짚고 묵묵히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제게 기회가 많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없어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표면적으로 배우 구혜선이 상업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선뜻 투자를 하기는 망설여질 것 같아요. 아직 상업 영화로서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면 좋겠지만 사실 지금 상황에서 제게 영화 흥행은 크게 중요치 않아요. 활동하면서 차곡차곡 쌓은 돈을 영화 제작에 고스란히 투자하고 흥행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물론 금전적 손해는 있겠죠. 하지만 돈을 잃어도 많은 걸 얻었다 생각해요. 한 가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이 되기 위해' 살아가고 싶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