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외모나 학력 등 각종 스펙에서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사람을 가리켜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졌다는 말이 통용된다.
사실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말은 30여년 전 한 젊은 과학자가 주장한 이론이다. 이는 단순히 잘난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 자체가 '이기적인 유전자'의 보존이라는 주장이었다. 주장의 장본인은 1976년 '이기적 유전자'를 펴내 전세계 과학과 종교계에 파란을 일으킨 리처드 도킨스다.
도킨스는 2007년 출간된 '만들어진 신'에서도 과학적 논증을 펼치며 신이 없음을 주장해 화제를 모은 진화생물학자이다. 그는 인간에 대해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라는 충격적인 정의를 내렸다.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이며 유전자에 미리 프로그램된대로 먹고 살며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고 그는 주장했다.
책이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2006년 '이기적 유전자'의 기념판이 나왔고 홍영남 서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와 이상임 서울대 연구원의 손을 거쳐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옮긴이는 출간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기에 주석을 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 수준으로 다듬었다고 말한다.
유전자가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해버린다는 저자의 주장은 출간 당시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직업이 교사인 한 독자는 자신의 제자가 이 책을 읽고 인생이 허무하고 목적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자 아무에게도 책을 보여주지 말도록 제자에게 충고했다며 저자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을 정도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이 '이기적 유전자'이지만 책은 오히려 인간의 '이타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생물 개체들은 '유전자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혈연 이타주의가 대표적인 예로, 유전자의 이기주의가 개체 이타주의로 모습을 바꾸는 사례 중 하나다.
또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유전이 단순히 유전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유전의 영역을 생명의 본질적인 면에서 인간 문화로 확장한 저자는 '밈'(memeㆍ문화유전)이론을 내놓는다. 저자가 새로 만든 용어인 '밈'은 모방을 의미한다. 이는 유전자처럼 체내에서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뇌로 이어져 모방을 통해 문화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유전자의 꼭두각시'라는 충격적인 단어를 썼지만 인간이 단순한 로봇은 아니라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우리의 뇌가 이기적 유전자에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정도로 진화했기 때문에 동물들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유전자의 이기적인 자기 복제'라는 폭정에 반역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우리가 피임 도구를 사용하는 것부터가 유전자의 유전을 조절하는 능력의 일환이다.
또 인간에게는 당장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따질 정도의 지적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생물학 서적이지만 누구나 읽기 어렵지 않은 단어와 문체로 쓰였기에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읽어 볼만하다. 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