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40년 영국이 청나라를 상대로 아편전쟁을 일으킨 것은 은(銀)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은 인도ㆍ동남아ㆍ호주는 물론 미국까지 포함한 국제무역을 주도하면서 은을 결제수단으로 사용했는데 마침 중국은 수백년 동안 국자재정의 운용을 은으로 해왔기 때문에 ‘은유동성’이 풍부했다.
지금처럼 지폐를 마구잡이로 찍어낼 수 없었던 영국은 은을 다량으로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아편을 수출했다. 아편수입이 급증하면서 국민건강이 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은이 대량으로 유출돼 오늘로 치면 위앤화에 해당되는 동전값이 급락,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청나라는 영국과 전쟁을 불사했던 것이다.
美 달러 마구 찍어 인플레 유도
은본위제의 청나라에서 국가에 바치는 세금은 은으로 내야 했는데 은값이 급등, 국민들의 조세부담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국이 ‘병든 사자’로 비웃음을 받았던 그때와는 달리 요즘 전개되고 있는 중국 위앤화와 미국 달러화의 기세싸움은 자못 호각지세를 보여주고 있다. 달러화를 찍어 전세계에 뿌려댐으로써 지구적 규모의 달러 인플레를 촉발, 수입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던 미국은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중국은 산업생산 능력을 높여 실업자를 구제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GDP 대비 5.6%로 사상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나라 빚이 이 정도면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딱 알맞은 조건이다. 그러나 미국은 예외다. 아편전쟁 당시로 치자면 미국은 은에 해당되는 달러를 쉽게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화가 이 같은 위상을 독차지하게 된 것은 전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영향력과 세계지도를 언제든지 다시 쓸 수 있는 군사력 덕분이다. 그러나 요즘 세계경제에서 문제는 달러가 너무 많이 살포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달러약세를 유도해온 미국의 금융정책에는 엉큼한 구석이 많다. 미국은 예로부터 자국의 위상을 위협해온 나라들에는 ‘달러 인플레 정책’을 금과옥조처럼 이용해왔다. ‘달러 인플레’는 바꿔 말해 경쟁국의 자산에 ‘거품 끼얹기’에 다름 아니다. 80년대의 플라자 합의가 우선 그렇다.
당시 일본경제가 욱일승천하면서 미국의 위상을 침범할 기미를 보이자 ‘엔 강세’를 강요했다. 엔화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일본의 명목 GDP도 덩달아 껑충 뛰어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때 미국보다 1만달러 이상 높아졌고 이에 따라 기세가 등등해진 일본인들은 미국의 노른자위 자산을 매입하는 등 마음껏 위세를 부렸다. 그것이 ‘거품’인 줄도 모르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일본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들어 이 같은 현상은 유로화에서 반복되고 있다. 유로화는 2001년 중반에 비하면 달러화에 대해 40% 가까이 비싸졌다. 덕택에 저성장에 시달려온 유로권의 명목 GDP가 뜀박질하기 시작해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이 명목 GDP의 순위에서 여전히 이탈리아 뒤에 서성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명목뿐 유로권 경제는 혈색을 잃어버린지 오래됐다.
경쟁국 견제하다 禍자초 위험
위앤화 등 동아시아 화폐들에 대한 미국의 파상공세는 이 같은 역사적 전철을 참고로 할 때 매우 고약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중국경제는 일본이나 유로권과는 다르다. 그곳에는 전세계의 원자재를 빨아들이는 13억이라는 ‘블랙홀’이 존재한다. 그리고 인도ㆍ브라질 등 ‘잘 살아보세’를 외치는 국가들이 너무 많아졌다.
설령 위앤화 절상을 통해 연안 공업화 지역에 거품을 끼얹을 수는 있어도 중국 자체가 양극화돼 있어 ‘거품 없는’ 노동시장이 계속 제공된다. 중국이라는 욕조 전체를 이용해 ‘거품욕’을 즐기기 위해서는 달러화의 희생이 너무 커진다는 데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달러화가 너무 떨어져서야 미국의 체통이 말이 아닐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이 일시적으로 달러강세를 가져올 수 있으나, 미국 주식ㆍ부동산시장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고금리 하에서 달러화가 급락하는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미국정부가 그동안 달러를 찍어도 너무 많이 찍어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