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문턱 낮춘 미술관 가보자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영국 런던은 예술의 천국이다. 내셔널갤러리·테이트브리튼·테이트모던과 같은 세계적인 유명미술관들이 특별전만 제외하고 입장료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무료입장 혜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을 위해 야간에도 개방한다. 예를 들어 내셔널갤러리는 평소에는 오전10시에 문을 열고 오후6시에 닫지만 매주 금요일은 오후9시까지 연장 개방한다. 테이트브리튼은 매달 첫주 금요일은 오후10시, 테이트모던은 매주 금·토요일은 오후10시에 문을 닫는다.

마지막 수요일은 무료·할인 혜택

미술관 전시를 관람하고 싶지만 돈도 시간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통 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파격적인 서비스에 힘입어 런던의 유명미술관은 늘 관객들로 북적거린다.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객수만 연간 450만(내셔널갤러리)~ 500만(테이트모던)명에 달한다. 미술관은 단지 전시관람을 하기 위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문화적인 충격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미술관의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술 관련 책을 사고 싶으면 서점으로, 논문을 쓸 때는 미술전문도서관이나 기록보관소로, 명사들의 강연·작가와의 대화·세미나·심포지엄에 관심이 있으면 강의실로, 학교 밖 미술관에서 이뤄지는 감상교육 참여를 원하면 교육실로, 미술 관련 영화를 보고 싶으면 영화관에 간다. 미술관은 이같이 평생학교의 역할만 맡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쉼터, 관광객을 위한 쇼핑몰 역할도 한다. 격조 높은 분위기에서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고 싶으면 레스토랑과 카페테리아로, 특별한 물건을 사고 싶을 때는 아트숍으로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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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미술관문화가 부러운 사람들의 귀가 솔깃해지는 희소식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해 전국의 미술관들이 무료관람 및 할인혜택·야간개방을 하게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미술관이 정부방침에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민간자본으로 운영되는데다 입장료가 유일한 수입원인 사립미술관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동참하는 데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술적 소양·안목 기르는 계기 되길

매달 한 번의 무료입장 혜택이 미술문화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미술사랑은 미술관을 방문하는 첫걸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미술관 구경 한 번 가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된 미술관 나들이가 예술적 소양과 안목을 가진 미술애호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좋은 작품을 느끼고 감상하는 능력은 재능보다는 훈련에 의해 길러진다. 미술관에 자주 와서 친해지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모처럼 전국의 미술관들이 한마음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초대받은 관객들이 '문화가 있는 날'을 미술에 대한 낯가림을 극복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훗날 미술관의 후원자가 돼 무료관람의 빚을 갚는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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