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28일 북한인권담당 특사 임명과 북한 인권증진을 위해 매년 2,400만달러 한도의 지출 승인 등을 골자로 한 북한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상원에서 통과한 법안은 지난 7월 하원에서 넘어온 법안을 일부 수정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하원으로 회부돼 하원 재통과와 대통령 서명 절차를 거쳐 발효된다. 그동안 말 많았던 북한인권법안이 미국 상원을 정식으로 통과함에 따라 제4차 6자 회담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한반도 정세는 더욱 불투명한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북한인권법안 무슨 내용 담았나=인권법 수정안은 특히 그동안 상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간 쟁점이었던 미국의 대북 원조와 인권문제 연계 조항(202조)과 관련, 원안에서 연계 조건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되 대통령이 필요할 경우 연계를 면제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을 “연계돼야 한다는 것이 의회의 입장”이라고만 천명하는 것으로 완화시켜 법적 구속력을 해제했다.
수정안은 또 국무부내 북한인권담당 특사를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역내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는 ‘북한과의 인권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의회의 입장”라는 말로 행정부측에 인권대화 추진을 촉구했다.
대북 인권 증진 활동과 관련, 이 법안은 북한의 인권ㆍ민주주의ㆍ법치주의ㆍ시장경제 증진 프로그램을 육성하는 민간 비영리단체 등에 2005~8 회계연도에 매년 200만달러, 대북 라디오 전파(매일 12시간으로 증대) 등에 같은 기간 매년 200만달러, 탈북자 지원 단체 및 개인 지원에 같은 기간 매년 2,000만달러 등 매년 총 2,400만달러 한도내의 지출을 승인했다.
법안은 이와 함께 북한 주민이 한국 헌법상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에 대한 망명이나 난민 신청 자격에 제한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6자회담 물건너갈 듯=그동안 북한자유법안과 북한인권법안을 ‘북한 전복법’이라고 비난해온 북한이 이 법안의 상원 통과를 북핵 6자회담 4차회담 불응 이유로 내세우는 등 더욱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북한의 최수헌 외무성 부상은 지난 27일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무기화 했다고 밝힌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 핵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꼬여만 가고 있다.
최 부상은 “북한을 제거하려는 미국의 정책 때문에 핵 억제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폐연료봉 8,000개를 재처리해 이미 무기화 했다고 주장, 6자회담에 대한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존 볼튼 미 국무부 군축ㆍ안보담당 차관의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발언으로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이번 일을 빌미로 대미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 한편 대남 비난의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여 남북관계와 6자회담 개최 분위기가 더 얼어붙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보안법 논란에도 불똥 튕길 듯=정부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북한 인권법안 논란이 거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간 국내 탈북자단체 일부와 우익 단체에서는 북한 인권법안 제정을 강력히 촉구했는가 하면 진보단체들은 북한 인권법안은 남북관계를 해칠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특히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 등은 미국의 북한 인권법안 폐지 또는 대체법안 상정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미국도 북한인권법안을 만드는 판국에 국내에서 보안법 폐지 움직임이 말이 되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북한인권법안이 국내에서 이념대결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