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무상보육을 비롯한 복지 부문에 투입되는 예산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서울시의 곳간이 빠른 속도로 비어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2일 서울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시 유휴자금 연 평잔' 내역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조1,179억원에 달했던 평균 잔액이 2월 말 현재 6,85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1년 사이 평잔이 38.7%나 줄어든 것이다. 2007년(2조1,722억원), 2008년(2조1,672억원)과 비교하면 3분의1토막 수준이다. 연초에 세수가 적게 걷히는 계절적 요인을 감안해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기부양을 위해 긴급히 재정을 투입했던 2009년(5,317억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서울시금고 평잔은 2010년 이후 회복세를 보이면서 2011년 8,015억원, 2012년 1조1,179억원까지 늘어났으나 무상보육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8,103억원으로 줄어든 데 이어 올 2월에는 6,852억원까지 곤두박질쳤다.
금융위기의 여진이 남아 있던 2010년에 평잔이 2,901억원까지 감소한 적은 있지만 당시와 같은 위기상황도 아닌데 시금고가 바닥을 보이는 것은 무상보육 등으로 복지 부문에 들어가는 돈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수는 한정돼 있는데 복지에 쓰는 돈이 많아지다 보니 날이 갈수록 잔액이 줄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올해 시세 수입 전망은 12조4,073억원으로 지난해의 12조 6,100억원보다 1.6%(2,037억원) 감소했다. 반면 올해 사회복지 비용은 6조9,07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4.9% 증가했다. 복지비용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늘어 올해 처음으로 30%대를 돌파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수는 한정돼 있는데 복지예산 등 시급히 써야 할 돈이 많아지면서 평잔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시는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늘리기 위해 소득기준을 최저생계비의 100%로 완화하는 것을 오는 2016년까지로 앞당기기로 하고 올해부터 소득기준을 최저생계비의 68%에서 80%로 늘리기로 했다. 이 같은 추가 복지비용이 늘어나면서 평잔이 과거처럼 증가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복지예산 증가속도가 지금처럼 빨라지면 얼마 못 가 서울시금고 평잔은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하루하루 필요 예산을 돌려막느라 임시변통을 하거나 일반예산을 집행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계로 치면 200만원이 넘는 현금이 지갑에 남아 있다가 갑자기 20만원으로 줄어드는 셈이어서 현금이 급히 필요할 때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 서울시가 무상보육 재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당시 서울시 예산 잔액이 바닥나 보육대란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다행히 서울시는 무상보육 재원 마련을 위해 지방채 2,000억원 발행을 결정하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앞으로도 이 같은 일은 언제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복지예산 증가와 함께 6월 지방선거 일정과 맞물려 지역 현안에 대한 자질구레한 집행예산을 서둘러 집행하면서 평잔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다.
평잔이 감소하면 시금고를 통해 얻는 이자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한푼이 아쉬운 서울시로서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서울시는 시금고인 우리은행과 미리 계약한 이자율에 따라 이자수입을 얻는데 평잔이 6,000억원대에 불과해 벌어들이는 이자수익도 지난해보다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