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CEO와 talk, talk] 고정석 일신창업투자 사장

"신보·기보등 정책금융은 줄이고 시장친화 기업금융 키워야"


[CEO와 talk, talk] 고정석 일신창업투자 사장 "신보·기보등 정책금융은 줄이고 시장친화 기업금융 키워야" 이연선 기자 bluedash@sed.co.kr 벤처캐피탈리스트(Venture Capitalist). 미국 MBA 출신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으로, 철저한 분석에 날카로운 직감을 총동원해 숨은 벤처기업을 발굴, 고수익을 거두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고정석(51) 일신창업투자 사장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벤처캐피탈리스트다. 군살 없는 몸매와 깍듯한 자세, 한 올 흐트러짐 없는 머리스타일과 안경테 뒤로 빛나는 눈빛까지. 그가 서울대 경영학과와 MIT경영대학원(박사)을 졸업하고, 91년부터 17년간 업계에 몸담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 같은 심증(?)을 굳혔다. 첫 대화는 여의도 일신빌딩 입구부터 11층 그의 사무실까지 지나쳐온 수십 점의 현대 미술품부터 시작됐다. -회사가 아닌 미술관에 들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로비, 복도는 물론 이 사무실까지 회화, 조소 등 작품이 정말 많네요. ▦회장님(김영호 일신방직 회장은 그의 외삼촌이다)이 사신 거죠. 회장님은 대학교 졸업전시회에 가서도 작품을 사실 만큼 현대미술을 좋아하십니다. 나중에 보면 가격도 오르더라고요.(웃음) -사장님도 현대미술을 좋아하시나요. ▦좋아하죠. 하지만 그 정도 실력은 없어요. ■ 고수익보다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 -보통 벤처캐피탈리스트 하면 ‘차갑다’고 하는데, 좀 다르신 것 같습니다. ▦리스크가 큰 직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의심이 많죠. 벤처캐피탈은 초기기업이나 신기술을 가진 기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꼼꼼해야 합니다. 잘못될 것을 피하는 게, 잘되는 것을 놓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중요해요. 미국 벤처캐피탈에서도 회사 앞에 유럽차(고급차)가 서있거나, 사무실 책상이 너무 깨끗하면 피하라는 말이 있어요. -지난 3년간 맡았던 벤처캐피탈협회장 직을 이번 달에 마치셨죠. ▦협회장이 된 2005년은 정부가 ‘제2의 벤처활성화 원년’을 선언한 시기였습니다. 2004년 카드대란으로 증시는 최악이었고, 우리 사정은 더 나빴죠.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인다’며 벤처 지원을 위한 대대적인 대책수립에 들어갔고, 이게 시장에 큰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업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체제도 정비됐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2004년에는요, 정말, 아 다 망하는구나, 했어요. ‘게이트’라 불리는 스캔들 때문에 아예 ‘벤처’라는 단어 자체를 기피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벤처활성화 대책에 힘입어 차츰 벤처생태계가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의심의 눈길을 주던 관료들도 도와주겠다는 자세로 나왔고요. 수익성도 나아져서 투자자금의 회수가 늘고, 펀딩 액수가 증가했던 게 이때부터죠. 이제 벤처캐피탈은 산업으로 인정 받습니다. -올해는 정권이 바뀌었으니 벤처도 변화가 있겠죠. ▦기업 친화적인 정부가 출범했으니까 벤처는 물론 모든 기업이 규제완화에 따른 혜택이 있을 거라고 봐요. 새 정부는 벤처캐피탈을 육성해 시장 친화적인 방법으로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 벤처캐피탈도 규제완화 혜택 기대 -구체적으로 무엇을 안다는 건가요. ▦우리나라 기업금융은 너무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이 주도하는 부채금융(loan) 중심이라 자기자본(equity) 시장이 발달하지 못했어요. 새 정부가 발표한 대로 은행을 통한 ‘온랜딩(On lending)’ 방식으로 전환, 시장 친화적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맞지요. 그래야 시장실패(시장에 의한 자본배분이 효율적이지 못한 상태)가 없습니다. 프라이머리CBO가 대표적인 예 아닙니까. 신보ㆍ기보를 줄여야 시장이 제 기능을 합니다. 여기에다 정부가 산업은행 매각으로 마련한 재원으로 모태펀드(Fund Of Fund)를 늘린다면, 취약한 자기자본 시장도 발달할 수 있을 겁니다. -정부 정책자금이 주도하는 시장이 벤처캐피탈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수익성을 떨어뜨리죠. 즉 비싸게 투자해서, 조금 거두는 겁니다. 이미 많은 벤처캐피탈이 초기기업보다 중견기업, 신기술보다 조선업ㆍ서비스업 등 재래기업에 대한 투자비중을 늘리고 있어요. 결국 손해 보는 건 신기술을 가진 정말 ‘벤처기업’이죠.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겁니다. ■ 자통법 시행땐 인력확보 어려워질 것 -내년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업종간 경쟁이 치열해져서 투자환경이 더 빡빡해질 텐데요. ▦위기감이 있어요. 현재 전성기를 누리는 PEF(사모투자전문회사)에 비해 벤처캐피탈은 투자에 제약이 많아요. 제일 걱정되는 건 인력입니다. 벤처캐피탈에 기회가 오기도 전에 전문인력을 다른 업계로 뺏기지 않을까. -해결책이 있을까요. ▦정책자금과 민간시장을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정책자금은 취지에 맞게 운영하고, 나머지는 제약하지 않는 겁니다. ‘선진화’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요. 규제 유무를 구분하고, 규제가 없으면 책임을 지는. -91년부터 일신창투 대표로만 17년. 다른 일 해볼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웃음) 그런 생각은 안 해봤고요. 그것보다 내가 중국에 태어났다면 크게 돈 벌었겠다 하는 생각은 몇 번 해봤어요. ■ 일신창업투자는영화 '은행나무 침대'등 연속 흥행 주목 일신창업투자는 1990년 1월에 설립, 지금까지 약 2,000억원 규모의 벤처투자조합 15개와 1억3,400만 달러 규모의 PEF 2개를 결성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엔 교육서비스, 에너지, 환경, 조선, 중장비부품 등에 약 860억원을 투자했다. 일신창투의 공격적인 투자행보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의류업체 지오다노와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 투자하면서부터. 1994년 홍콩에서 잘 나가는 프랜차이즈 유통회사 지오다노를 국내시장에 가져와 성공시켰고, 1996년 '은행나무 침대'에 이어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을 잇따라 흥행 시키며 벤처캐피탈업계가 충무로 영화계의 큰손으로 떠오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일신창투는 본래 유통, 엔터테인먼트 보다 인터넷, 정보통신 등 하이테크 분야에 투자자산의 40% 이상을 집중하는 정통 벤처캐피탈이다. 지금까지 휴맥스, 씨디네트웍스, 그래텍, 사이버텍홀딩스 등의 투자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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