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엽기행정과 血稅

전남 목포시가 멀쩡한 가로수의 일부를 잘라내 조각을 하고 색칠을 했다가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아예 밑동까지 베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였다. 지난달 목포시는 높이 5m 이상 되는 30년생 가로수 30그루를 3m가량씩 잘라내어 시를 상징하는 마크와 홍어ㆍ조기 등 지역특산물, 국화 등 다양한 종류의 조각을 한 뒤 빨갛고 노랗게 색칠을 했다. 도시 미관을 살린다는 구실이었다. 이런 상식 이하의 행정에 시민들의 항의전화와 네티즌들의 항의글이 무더기로 쏟아지자 목포시는 조각 가로수들을 몽땅 베어버렸던 것이다. 멀쩡한 가로수를 두번 죽인 잔인한 처사였다. 공무원들이 고달픈 서민의 설움과 아픔을 한 가지라도 덜어주기는커녕 어떻게 해서 이처럼 터무니없는 발상을 하게 됐을까. 공무원들의 형편없는 사고방식, 상식 이하의 세금 낭비가 어디 목포시의 경우뿐일까. 연말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곳곳에서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어버리고 새것으로 깔아서 귀중한 혈세를 낭비한 사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하는 짓이 이 모양이니까 철밥통이니 탁상행정이니 하는 말도 모자라 이제는 엽기행정이란 말까지 나온 것이다. 비합리적 예산 집행 비일비재 상식 중의 상식이라 새삼 강조하기도 싫지만 공무원이란 국민의 공복(公僕)이다.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동ㆍ면서기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혈세로 봉급을 받고 국리민복을 위해 멸사봉공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공직자들은 모름지기 혈세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가로수 한 그루, 보도블록 하나도 모두가 국민의 피땀 어린 혈세로 마련한 것이 아닌가. 공무원의 혈세 낭비는 주인인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요, 나아가 국부(國富)의 도둑질과 마찬가지다. 혈세 낭비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말이 나온 지도 오래 전이고 가렴주구(苛斂誅求)란 말도 있다. 가렴주구란 세금을 가혹하게 징수하고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 짓을 가리키니 이는 곧 학정(虐政)과 다름 아니다. 정부가 세금 쥐어짜기에 혈안이 되다시피 하니 가렴주구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혈세를 두렵게 여겨 아껴 쓸 생각은 않고 걸핏하면 국민의 부담을 늘려 고혈을 짜내려 하니 학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평균 조세, 국민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므로 결코 과중한 세금 부담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이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OECD 국가 평균치인 3만달러의 절반 수준이란 사실을 도외시한 궤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은 ‘혈세의 사전적 의미는 가혹한 조세인데 우리나라에 그 정도로 가혹한 세금이 있느냐’면서 ‘세금에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이런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혈세란 국민이 희생과 고통을 무릅쓰고 낸 세금이다. 혈세를 낭비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면 과중한 세금 부담을 줄이고 낭비 요소를 없애며 작은 정부를 지향해 씀씀이를 대폭 줄여야 마땅할 것이다. 국민의 동의도 받지 않고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국책사업이나 대북 지원에 혈세를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정부 부처와 업무가 중복되는 위원회도 대폭 정비해야 하고 이 정권 들어 2만여명이나 늘어난 공무원 수도 다시 줄여야 한다. 정부의 방만한 예산 낭비 사례는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렵다. 무분별한 지역개발사업 추진에 따른 토지보상비만 해도 지난 2004년 14조원에서 지난해에 18조원으로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예금보험공사ㆍ자산관리공사 등을 통해 각종 금융기관에 지원된 공적자금 167조8,000억원 가운데 회수액은 75조8,000억원에 불과하여 90조원의 혈세가 날아갔다. 작은 정부 지향해 세금 아껴야 극빈층으로 분류돼 연간 4조3,000억원의 국고지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5년간 100회 이상 해외여행을 한 엉터리 극빈자가 100명에 이르렀다. 주먹구구식 전략증강사업에도 천문학적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 하나도 변한 것 없는 김정일 정권에 퍼주기도 전임 김대중 정권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앞서 예를 든 목포시의 엽기행정은 정부의 혈세 낭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하지만 새 발의 상처도 커지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공무원들이 변해야 한다. 자기 돈이라면 이렇게 펑펑 쓰지 못할 것이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빈민이 되고 빈민이 추락하면 원민(怨民)이 된다. 국민을 한 많은 궁민(窮民)ㆍ원민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렴주구로 정권이 바뀐 경우가 많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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